위로가기 버튼
외부기고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둥근 축구공’

image
박종률 우석대 교양대학 교수

“공은 둥글고 경기는 90분간 계속된다.” 1954년 스위스 베른에서 열린 월드컵 결승전. 우승 주역인 서독의 제프 헤르베르거 감독이 남긴 말이다. 그는 모두의 예상을 깼다. 강호 헝가리를 누르고 ‘베른의 기적’을 만들었다. 축구의 명언이 된 이 말은 ‘공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승부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의미로 쓰인다. Nobody knows. 강팀이 항상 이긴다는 법은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약팀이 승리의 감격을 누릴 때도 있는 것이다. 사실 곰곰이 따져보면 공은 둥글다는 표현은 애매하다. 축구공은 진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는 다르다. 대부분 어디로 튈지 알 수 있다. 돌출변수를 빼면 둥근 축구공은 본대로 찬대로 굴러가 결과를 만든다.

 

공은 둥글다는 진리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새삼 확인됐다. 우리 태극전사들이 조별리그 마지막 포르투갈 전에서 보여준 ‘추가시간의 감동’이 이를 증명한다.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이를 악물고 뛰었던 우리 선수들은 역전승의 기적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루과이와의 승점, 골 득실에 이은 다득점 기준을 통과하며 월드컵 통산 세 번째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뤘다. 물론 안타깝게도 원정 첫 8강행을 앞에 두고 세계 최강 브라질의 벽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해 승리 확률이 높지 않았던 국가들의 선전은 조별리그에서 계속 이어졌다. 일본도 16강전에서 크로아티아에 승부차기 패배를 당했지만, 그에 앞서 ‘전차군단’ 독일과 ‘무적함대’ 스페인을 꺾는 파란을 연출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아르헨티나에 역전승을 거뒀다. 예선전이었지만 튀니지가 프랑스를, 카메룬이 브라질을 꺾은 것도 기억에 남는 경기였다. 

 

둥근 축구공은 땀과 꿈의 결정체다. 남들은 ‘이변’과 ‘반란’으로 약팀의 승리를 평가한다. 하지만 승리를 일궈낸 선수들에게는 이변이 아닌 당연한 귀결이다. 정당한 보상이다. 경기에 나선 선수들은 공이 둥글기 때문에 승부를 예측할 수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땀과 꿈이 없는 기적은 없다. 기적은 생겨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공이 굴러가는 만큼 선수들은 더 달리고 뛴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만큼 꿈은 더 커진다. 끝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뛴 선수들에게 축구공은 보람과 감격을 선물한다. 둥근 축구공의 진리 앞에 내로라하는 강팀들도 고개를 숙였다. FIFA 랭킹 2위 벨기에를 필두로 독일, 멕시코, 덴마크 등이 우수수 예선 탈락했다. FIFA는 우리 대표팀의 16강 진출을 두고 “그들은 꿈꾸고 믿었고 이뤄냈다”고 박수를 보냈다.

 

단일 종목 스포츠 행사로는 지구촌 최대 규모인 월드컵. 월드컵은 그야말로 국가대항전이다.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이다. 국가와 국민의 자존심이 걸린 무대다. 경기 시작 전 녹색 그라운드 위에는 대형 국기가 펼쳐진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국가(國歌)를 부르며 최선을 다짐한다. 자국민들은 목이 터질 듯 열정적으로 응원한다. 모든 시선이 축구공에 집중된다. 공 하나에 울고 웃으며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그러나 진정 둥근 축구공은 승패를 떠나 꿈꾸는 사람들의 것이어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사람들을 위해 공은 굴러가야 한다. 방탄소년단 BTS의 정국이 부른 월드컵 송 ‘드리머스(Dreamers)’는 이렇게 노래한다. “우리는 꿈꾸는 사람들이야. 우리는 이뤄낼 거야. 우리는 믿으니까. 우리는 볼 수 있으니까”. 

/박종률 우석대 교양대학 교수·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정부尹대통령, 6시간만에 계엄 해제 선언…"계엄군 철수"

정부尹대통령 "국무회의 통해 계엄 해제할 것"

국회·정당우의장 "국회가 최후의 보루임을 확인…헌정질서 지켜낼 것"

국회·정당추경호 "일련의 사태 유감…계엄선포, 뉴스 보고 알았다"

국회·정당비상계엄 선포→계엄군 포고령→국회 해제요구…긴박했던 15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