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도 우도 싫습니다. 제발 정치인이나 정당 현수막 좀 제발 안 봤으면 좋겠어요. 안 그래도 요즘 비극적인 뉴스 천지인데 밖에 나와서도 막말에 가까운 현수막을 국민이 왜 강제로 봐야 합니까”
국회가 현수막 정치를 사실상 방조·권장하면서 1일 0시부터 누구나 정치 현수막과 유인물을 배포할 수 있게 됐다.
전국 길거리의 현수막 난립은 지난해 5월 국회를 통과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같은 해 12월 시행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때문에 증오의 언어로 점철된 도내 불법 현수막은 당분간 더욱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전북 국회의원이나 공당의 현수막은 이전에도 고삐 풀린 채 인구 유동성이 높은 지역에 마구잡이식으로 걸려있었다.
여기에 정치 현수막이나 유인물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공직선거법(선거법)의 일부 위헌·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해 국회가 선거법 개정 작업을 시한인 7월 31일까지 마무리하지 않으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조짐이다.
‘정당이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하여 표시·설치하는 경우’의 현수막은 옥외광고법에 따른 어떠한 규제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신고·허가가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수량과 규격에 대한 제한도 없어 사실상 누구나 마음껏 아무데서나 현수막을 걸어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현수막의 표시 방법 및 기간을 정한 대통령령(시행령) 역시 게시 기간을 ‘15일 이내’로 정한 것 외엔 문구에 대한 규제는 없다. 혐오·비방 문구의 현수막이 경쟁적으로 범람하는 가장 큰 이유다.
이러한 논란에도 여야는 말을 맞추기라도 한 듯 현수막 문제에는 모두 필요악이라는 반응이다. 정당 정책을 알리고, 지역 국회의원이 유권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 명분으로 국회가 처리한 옥외광고물법은 정치적 현안에 대한 현수막은 사전 신고나 허가 없이 아무 데나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현수막에 대한 제제가 사라지자 전북은 물론 정치인이나 정당의 현수막은 어린이들이 봐도 비웃을 정도의 유치한 비난으로 그 내용이 채워지고 있다.
지자체는 법의 효력은 물론 국회의원과 정당의 눈치에 사실상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모든 정당 중앙당이나 도당, 지역위원회는 자극적인 현수막 게재를 내부적으로 권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국회 주변에는 중앙당 차원의 현수막이 전북 어느지역보다 난잡하게 걸려있다.
그 문구도 민망하기 짝이 없다는 평가다.
지난해 지선에서 불법 현수막을 걸지 않기로 협약까지 맺은 전주는 현수막 청정도시라는 목표를 1년도 채우지 못했다.
전주에선 더불어민주당이 내건 원색적인 정권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국민의힘도 이에 질세라 민주당을 시정잡배로 취급하는 내용의 현수막으로 대응하고 있다.
진보당이나 정의당의 비난 수위는 한층 더 높다. 그러자 보수당원들은 더한 원색적 언어로 상대를 비방했다.
무분별한 지역색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 지난 4월에는 당시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강성희 진보당 후보를 겨냥한 국민의힘 전주을 당원 명의의 현수막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해당 현수막에는 “전주는 공산주의 해방구인가” “친일 매국노보다 우리는 간첩이 더 무섭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이밖에도 다른 극우 성향의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이 전주 시내 일부에 상당 기간 게시된 일도 있었다. 강 의원과 진보당도 이에 질세라 지역구인 전주을에 “일본의힘이 진짜 반국가세력”이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원전 오염수 논란을 빗댄 현수막도 정당을 막론하고 단골 소재다. 서로 자기 정당의 현수막이 더욱 눈에 띄게 하기 위해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를 넣은 것은 덤이다.
앞에서는 환경보호를 강조하며, 불법 현수막은 권장하는 정치권의 이중 잣대도 눈살을 찌뿌리게 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생기는 폐현수막은 대부분 폴리에스터(플라스틱) 등 화학섬유원단으로 제작돼 매립해도 잘 썩지 않는다. 소각하면 유해물질과 온실가스가 배출돼 곧바로 대기 환경 악화로 직결된다.
처리 비용조차 정당이 내는 것이 아닌 국민 세금으로 떠안아야 한다. 일례로 2017년 대선 때 2만여 개, 2018년 지방선거에선 13만여 개, 2020년 총선에선 3만여 개 현수막이 사용됐으나 대부분 재활용되지 않고 국민 세금을 통해 폐기물로 처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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