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立春)’이 막 지났다. 한 해의 첫 절기이자 겨울의 끝자락에서 희망의 계절 봄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날이다. 농경사회를 이어온 우리 조상들이 매우 중요하게 여긴 절기다. 새봄이 시작되는 날인 만큼 한 해의 행운을 기원하는 다양한 풍속이 있었다. 집집마다 한 해의 복을 기원하며 대문이나 기둥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글귀를 큼지막하게 써 붙이곤 했다.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한다’는 의미의 입춘축(立春祝)이다.
그런데 입춘의 의미가 갈수록 퇴색하고 있다. ‘입춘대길’이라는 문구도 무색해졌다. 대신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의미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문구를 더 자주 접한다. 우선 날씨가 봄소식과는 거리가 멀다. 봄기운 대신 매서운 한파가 기승을 부린다. 올해도 역시 ‘입춘 한파’가 맹위를 떨쳤다. 사람들의 마음도 여전히 꽁꽁 얼어있다. 모두가 ‘입춘대길’을 염원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는 ‘춘래불사춘’이다.
특히 올해는 더 그렇다. 탄핵정국의 대혼란 속에 대형 여객기 참사로 어느 때보다 침통한 분위기 속에 맞이한 을사년(乙巳年) 새해, 혼란과 대립의 끝을 알 수 없다. 꽁꽁 얼어붙은 경기에 서민 살림살이는 여전히 팍팍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계속되는 경기 불황 속에 탄핵정국으로 인한 정치·경제적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서 민생경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특별한 기회, 새로운 희망을 기대했던 전북지역도 찬바람이 거세다. 지자체와 지역정치권에서 교통오지 탈출을 위해 전력을 쏟았던 ‘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처리는 또다시 해를 넘겼고, 국회에서 감액 예산안이 통과되면서 다수의 지역 현안사업이 국가예산에 반영되지 않았다. 그리고 새해 ‘2036 하계올림픽 유치’와 ‘전주·완주 통합’, ‘군산~목포 서해안철도 국가계획 반영’, ‘새만금 특별지방자치단체 설치’ 등 굵직한 현안이 과제로 주어졌다. 지역소멸 위기의 시대, 지역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전망이 밝지 않다. 어느 것 하나 장담할 수 없다. 도민들이 애타게 기다려온 ‘전북의 봄날’은 여지껏 소식이 없다. 지난해 초 떠들썩하게 출범한 전북특별자치도에 대한 ‘특별한’ 기대도 어느 순간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 예견된 일이다.
‘입춘에 장독 깨진다’는 속담이 있다. 이 무렵 추위가 매서워 장독이 얼어서 깨진다는 말이니, 옛사람들도 입춘에 봄맞이 준비를 한 것만은 아닌 듯 싶다. 매서운 한파를 견뎌내며 포근한 봄소식, 좋은 날을 원하고 기다렸을 것이다. 그렇다. ‘입춘대길’이라 써 붙인 입춘축(立春祝)은 희망과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스스로의 다짐이다. 이루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희망의 봄날을 기다려볼 일이다. 그래도 봄은 온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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