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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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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은 ‘정해진 연도’라는 뜻으로 노동자가 일정한 연령에 달하면 직장에서 자동으로 퇴직하는 제도다. 지금은 퇴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인간의 역사에서 퇴직은 새로운 제도였다. 농경시대에는 퇴직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러다가 19세기 중후반, 노인을 퇴직시키고 청년을 고용해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려는 자본주의가 들어서면서 퇴직제도의 필요성이 거론되었다. 이 제도를 맨 처음 도입한 나라는 프러시아(독일)로, 비스마르크 재상이 1889년 공무원의 정년을 65세로 정하면서다. 이후 영국에서 1908년 공무원 정년에 이 조항을 포함시켰다. 이어 미국이 1929년 경제 대공황을 맞아 실업에 허덕이던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정년 65세 제도를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 기업이 우리나라에 진출하면서 일본의 정년제를 그대로 가져왔다. 당시 정년은 50세였다.  정부수립 이후 정년제도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으로 나눠진다. 공무원은 1963년 ‘국가공무원법’에서 5급 이상 61세, 6급 이하 55세, 기능직 40∼61세로 규정했다. 1986년에는 6급 이하 공무원 정년이 58세로 연장되었다. 1998년에는 IMF 금융위기를 맞아 일반직 및 기능직 정년을 1년씩 단축해 5급 이상 60세, 6급 이하 57세로 변경했다. 그러다 국가공무원은 2008년, 지방공무원은 2013년부터 60세로 단일화했다. 65세이던 교원 정년은 1998년 IMF 때 고통 분담 차원에서 62세로 조정되었다.

반면 민간부문(기업)의 정년은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 의해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맡겨졌다. 민간에 실질적인 정년제가 도입된 것은 1991년 제정된 ‘고령자고용촉진법’ 시행부터다. 이 법에서 사업자는 노동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강제성이 없는 권고규정이었다. 2013년에 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돼 60세 정년 의무화가 실시되었다. 하지만 2023년 중장년 구직확동 실태조사를 보면 임금노동자의 주된 직장 퇴직 연령은 평균 50.5세에 불과하다.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는 정년 파괴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은 1986년, 영국은 2011년에 정년 자체를 폐지했고 네덜란드는 67세, 독일은 66세, 프랑스는 62세로 올렸다. 일본은 60세로 돼 있으나 65세까지 고용의무를 지우고 있으며 최근 70세로 올리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정년 연장이 탄력을 받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10월부터 공무직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면서 논의의 물꼬를 텄다. 이를 계기로 정치권과 노동계 등에서 정년연장 담론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정년 연장은 퇴직연령과 연금수급 사이의 소득 크레바스(공백),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 청년 고용 위축여부, 기업 부담 증가 등과 맞물려 있어 해법이 쉽지 않다. 그러나 거세게 밀려드는 초고령화 물결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제 우리 사회도 정년 연장을 넘어 폐지까지 검토할 때가 되었지 않을까 싶다.  (조상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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