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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자본과 예술, 그리고 행복 - 김정수

김정수(극작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같은 영화가 달리 보이는 경우는 종종 있다. <사운드 오브 뮤직> 은 분명 서른 번 이상 봤지만, 신기하게도 처음 본 듯한 장면들이 아직도 있어 깜짝 놀라곤 한다. 기억의 문제를 떠나서, 사춘기 적 보았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전쟁과 평화> , <닥터 지바고> 등의 명화도 처음엔 그저 사랑이야기였다가, 한참 후 비로소 역사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 영화들이었다. 경우는 다르지만 그런 의미에서 <아마데우스> 도 새로운 느낌을 제공했던 영화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짤트의 생애를 담은 이 영화는 영화화되기 이전 연극무대에서 짜릿한 감동을 주었던 작품이다. 영화에 비해 모짤트의 라이벌이었던 살리에르의 인간적 고뇌와 갈등이 훨씬 강하게 부각된 연극이었다. 젊은 시절, 국내 초연 무대를 보면서 모짤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테리와 살리에르의 인간적 번민에 흠뻑 빠졌었던 기억이 있다. 그 나이에 볼 수 있던 만큼의 <아마데우스> 였다.

 

돌이켜보면 차라리 행복한 시간이었다. 최근 이 <아마데우스> 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가슴에 파고드는 느낌은 자본과 예술의 지배와 종속 관계에 관한 것들이었다. 한 예술가를 옥죄이는 현실적 문제와 더불어 그를 둘러싼 암투가 죽음이라는 그림자로 이미지화되어 다가왔다. 중년이 되어 느끼는 단상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씁쓸하다.

 

갈수록 대형화 되어가는 무대와 현대적 메카니즘이 필수적인 공연 형태에서 원론적이고 기초적인 예술관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어져 가고 있다. 예술이 그 생산을 자본에 기대는 것조차 부정할 수는 없지만, 자본에 의해 철저히 제어되는 무대예술 시스템 속에서는 투자되는 비용이 예술의 질을 결정하는 중대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무대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돈대로 나온다’는 자조적 넉두리는 한 예술가가 자기의 예술 세계를 웅변하기에는 막강한 자본의 기획력 앞에 얼마나 무기력해질 수 있는가를 우회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무대 예술가들도 사람이다. 생존해야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같은 요인에 의해 좌절하고, 나아가 절대적 맹종으로 기우는 것만은 반대하고 싶다. 예술이 사람에 의해 생산되고 사람을 위해 기능한다는 사실, 그리고 이를 통해 서로가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면, 예술의 존재 이유와 당위성이 뒤바뀐 상황을 바로 잡을 노력도 가능하고 또 필요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지난 해, 중남미 국가 순회공연 때였다. 명색이 국립극장인데도 각종 장비는 형편이 없었다. 백 년 이상씩 된 오페라극장에는 사람의 손에 의해 무대세트가 오르내려야하는 불편함과 불안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을 여유있게 받아들이는 그들을 보면서, 그 불편함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불편함을 불행하다고 생각한 것은 오히려 우리였다. 그렇다. ‘넘치는 것이 모자라는 것보다 낫다’는 말을 아직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

 

/김정수(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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