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창작에 전념할 수 있기를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 2011년, 영화계의 유망주로 주목받던 신예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이웃집 문에 붙였던 쪽지다. 그 해, 생활고에 시달리다 결국 안타깝게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예술계의 비극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최고은 작가의 죽음은 예술인의 열악한 삶을 고발하며, 예술계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었다. '최고은 법'으로 불리며, 이후 10년 넘게 수차례 개정을 거쳐 예술인 복지의 기틀을 어느 정도 마련했다. 하지만, 예술인들의 삶은 나아졌을까? 이 물음으로부터 글을 시작한다. 예술인복지법 시행 이후, 예술인 지원의 방식과 기준에 변화가 있었다. 예술인은 단순한 창작자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자로서 존재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는 헌법 제1조에 명시된 '국가는 예술가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과 합의의 결과다. 이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설립되면서 예술 노동과 예술인 삶을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올해 예산은 5년 전보다 166% 증가한 1,067억 원. 예술활동준비금, 생활안정자금, 예술인 고용보험, 공공임대주택 지원 등이 그 대표적 사업들이다. 필자가 속한 기관에서도 많은 예술인이 중앙복지사업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그 결과, 약 6,100명이 예술인 활동증명을 완료했고, 올해 601명이 예술활동준비금 18억 300만원을 지원받았다. 이는 전북지역 예술인 활동증명 완료자 수 기준 약 10%에 해당하는 수치다. 높지 않은 비율이라 아쉽지만 그나마 이를 제외하고는 지역 예술인들이 혜택 볼 수 있는 사업은 극히 제한적이다. 특히, 국토부와 협력하여 예술인들에게 주거∙창작공간을 지원하는 사업은 주로 서울 중심부에 공공임대주택이 위치해 있어 생활권이 지역인 예술인에게는 먼 이야기일 뿐이다. 육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자녀돌봄센터도 마찬가지다. 또한 예술인고용보험과 산재보험도 문화예술 용역 및 일거리와 연결되는 것을 고려할 때, 예술시장이 열악한 지역의 현실에서는 그 체감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단순히 지역 소외와 차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술인복지사업에서도 나타나는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 예술의 격차를 심화시키고, 청년예술가의 지역 유출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이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 국가의 정책은 지역 곳곳으로 이어져야 하며, 예술인 복지정책 또한 예술인의 삶 곳곳에까지 맞닿아야 한다. 중앙과 지역, 현장과 사람, 일상으로 연결되는 범국가적 예술인 복지정책을 위해서는 지역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바로 중앙과 지역을 잇는 강력하고 활발한 협력적 연계망이다. 그리고 광역단위든 지역이든, 예술인 복지 기능과 역할을 위한 거점이 마련될 때, 중앙 정책이 지역 곳곳, 예술가의 삶 깊숙이 뿌리내릴 수 있다. 지역 예술의 수요를 반영하지 못하는 예술인 복지정책 한계점에 대한 지역의 제안이다. 예술인들의 삶은 좀 나아졌을까? 지금도 예술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검증하고 있을 그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란다. 비록 작고 습한 지하 작업실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을지라도, 오롯이 창작에 매진할 때, 무대와 관객을 압도하며 우리 삶과 사회를 더 가치 있게 만드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진아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 문화예술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