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판 ‘혹성탈출’을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삼십년 전쯤 티비에서 처음 보았던 나는 상당 기간 이 영화가 흑백이라는 착각을 하며 살았다. 흑백 티브이 세대의 아픈 상흔이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대부분 장면들은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그 영화가 남기려했던 메시지만은 비교적 정확히 남아있었다. 불시착 했던 낯선 혹성이 지구였음을 확인하는 마지막 바닷가 장면의 처절한 순간과 쓰러져 있던 자유의 여신상만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컴퓨터 그래픽 없이 수제 특수분장을 사용한 이 영화가 몇 년전 다시 만들어졌던 신판 혹성탈출에 비해 훨씬 단단한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생각했다. 그건 내 생각 뿐만이 아니었다. 고맙게도 전형적인 컴퓨터 세대인 두 아들들도 그 사실에 동의해주었다. 비교적 함께 영화 보는 시간이 많은 편인 우리, 조금 오래된 영화를 볼라치면 나는 “참 괜찮은 영화지. 그지?” 라며 은근히 옛날 거 무시하면 안 된다는 쪽의 멘트를 날린다. 그리고 내가 살았던 시대도 제법 괜찮았음을 과시한다. 기성세대의 일원임을 증명하는 수작이긴 하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스타 워스’ 꿰맞추기를 했다. 알다시피 이 영화는 삼 십년 전부터 4편, 5편, 6편 순서로 제작되었고, 에피소드란 이름으로 1편부터 제작되었기에, 그동안 뒤죽박죽이 되어 있던 스토리를 1편부터 차근히 정돈해 두자는 취지였다. 아들들의 강력한 도움으로 진행된 이 영화보기를 통해 오래된 영화들이 훨씬 인간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허술한 만큼 로봇 하나에서도 인간의 체취가 강하게 느껴졌다.
요즘 복고댄스가 한창 인기다. 어느 세대에 물어봐도 자신들의 춤이 아니라 하니, 어느 시기로 복고 했는지 아리송하긴 하지만, 나이트댄스와 테크노댄스를 적당히 버무려 놓은 듯한 이 춤이 일단 ‘복고’ 자체를 하나의 유행상품으로 띄워놓은 것만은 사실이다. 티비 드라마의 복고도 활발하다. ‘청춘의 덫’에 이어 김수현의 ‘사랑과 야망’이 이십년만에 브라운관에서 재연되고 있다.
이 같은 양상에 긍적적 평가도 부정적 평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될 수 있는 ‘그 무엇’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태리의 문예비평가 폴티는 서른 여섯 가지 극적 경우로 모든 소설과 드라마를 분류한 적이 있다. 실제로 많은 이야기들은 그 범주 안에서 진행된다. 그것이 인간의 경험할 수 있는 폭이며 상상력의 크기다. 그러기에 옛것을 통해 새로움을 배우라는 조언은 여전히 큰 설득력을 얻는다.
복고가 유치하고 촌스러움의 표상으로 희화화되는 일은 문제다. 지난 시대에 존재했던 문화적 상황을 가슴으로 느끼고 그 안의 삶을 존중함으로써 진정한 온고지신이 가능해질 거라 믿는다. 세대 차이? 그리 문제될 일이 아니다. 우린 함께 살고 있고,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수없이 공감할 ‘그 무엇’들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김정수(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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