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문화재 환수가 아닌 도쿄대학교의 기증형식으로 돌아온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47책을 보면서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기록의 도시’를 강조해 온 우리는 뭘하고 있나? 전주를 떠난 지 4백년이 넘은 실록뿐 만 아니라 1년 전에 ‘대여’해 간 태조 어진도 감감 무소식이고, 완판본이나 전라도에서 출간된 옛 전적을 제대로 소장하고 있는 곳 역시 우리 고장에는 없다.
두해 전 모 대학에서 조선왕조실록 전주사고본을 환수하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뒤 2년이 흘렀지만 환수 움직임은 전혀 없고, 태조어진은 누가 잘못했느니 하다가 어진전을 세우는 것이 좋네 마네하고만 있다. 그럼에도 우리고장은 출판의 고장이고, 기록의 도시란다. 무엇이 문제일까 ?
실록, 애초에 방향이 잘못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전주사고본은 전주 것이 아니다. 임진왜란 때에 전라도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냈지만, 조선전기 전주사고본은 그후 선조~철종대가지가 합쳐져서 정족산성본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약탈’되지 않은 전주사고본만을 ‘환수’하자는 것은 맞지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적상산성본 환수운동을 벌이는 것이 맞다. 적상산성본은 한국전쟁 때 북한이 약탈해간 문화재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전 기간 동안 실록을 보존한 곳은 전라도가 유일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태조어진 문제의 핵심은 보물로 지정된 어진에만 있지 않다. 보존관리 측면에서 보면 어진이안에 사용된 각종 장엄구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문화재청이나 국립전주박물관, 전주시, 전문가들 모두 이 점에서는 똑같다. 지정된 보물만 관리해야 할 문화재인가? 어진과 동 시기에 제작된 장엄구들 역시 하루빨리 보존 관리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이 유물을 속히 박물관에 위탁 보존토록 한 뒤, 어진 반환을 이야기해야 한다.
태조어진은 일단 무조건 가져와야만 한다. 어진 외의 장엄구들에 대해 일언반구 한마디 없는 문화재청이나 국립고궁박물관이나 이참에 어진을 차지하려는 그 꿍꿍이 속은 똑같다. 국립고궁박물관이나 국립전주박물관 모두 국립박물관이다. 어진이 굳이 고궁박물관에 있을 이유가 없다. 일단 국립전주박물관으로 가져다 놓고 이야기하면 된다. 국립전주박물관 역시 그저 임기만 채우고 떠나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앞장 서야 한다. 국립전주박물관만이 현 단계에서 어진을 제대로 관리할 시설도 있고 인력도 있기 때문이다. 그저 상황이 되면 할 수 있다는 수동적인 생각을 버리고 우리가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화재청과 고궁박물관을 설득해야만 ‘전북’에 있는 국립박물관으로 사랑받을 것이다.
어진에 대한 우롱과 실록환수에 대한 한탄 속에서 이제 적상산성본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와 어진반환위원회를 꾸려야 할 모양이다. 위원회 세상이라지만 꼭 필요한 것을 만들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홍성덕 연구사는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에서 근무한 뒤 전주시청 연구원을 거쳤으며, 대통령비서실 정책자문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등을 맡고 있다.
/홍성덕(전북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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