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미국의 한 대학교수가 세계에서 비만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로는 미국이, 가장 적은 나라로는 일본을 꼽으면서 그 이유로 일본인이 하루 평균 6.4Km를 걷는데 비해, 미국인은 하루 평균 1000에서 3000보를 걷는데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발표했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건강한 생활에 걷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기사였다. 갑자기 끝없이 걸어 다녔던 파리에서의 일주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나는 걷기가 육체의 건강 뿐 아니라 또 다른 행복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파리는 작은 도시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곳은 모두 걸어서 갈 수 있다. 실제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보아도 한 정거장이 30초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래서인지 거리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나도 그 중 한사람이었다. 개선문에서 에펠탑까지, 오르세 박물관에서 세느강을 건너 루브르 박물관까지, 그리고 룩셈부르 공원에서 솔본느 대학까지... 이렇게 걷다보니 그 동안 보지 못했던 파리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보지 못했던 파리의 뒷골목이 보였다. 골목과 골목 사이에 있는 작은 상점과 찻집에서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파리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도를 보지 않아도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골목 모퉁이에 있는 빵집, 시장 입구에 있는 과일 가게, 어느 벽에 붙어있는 작은 영화 포스터와 콘서트 포스터가 거리의 이름보다 먼저 내 머리 속에 남았다. 파리는 이번이 네 번째다. 지금까지 내게 파리는 박물관의 그림과 영화관의 영화로만 기억되었지, 파리라는 도시 그 자체로는 기억된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걸어 다녔던 골목, 거기서 만났던 사람들이 내 발과 내 머리 속에 그대로 기억되어있다. 지도를 보지 않아도 파리의 모습이 그대로 떠올랐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신문을 읽으며 서울을 떠올려보았다. 30년을 넘게 살아 온 곳이다. 그런데 서울의 모습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서울의 거리를 걸어 본 기억이 아득하다. 이런 저런 핑계로 서울에서는 참 걷지 않는다. 내 발이 기억하는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서울이 아름답지 않은 도시라고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서울을 구석구석까지 잘 알고 하는 말일까? 문득 전주의 한옥마을이 생각났다. 처음 한옥마을을 둘러보며 놀라고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그곳을 차로 지나갔다면 한옥마을에 대한 기억이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기차와 자동차가 처음 생겨났던 근대 초기, 사람들은 걸어 다니며 보던 풍경과 다른 풍경을 보며 경이로워했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너무 자동차의 속도로만 풍경들을 봐왔다는 생각이 든다. 천천히 걸으며 몸으로 도시를 느낀다면 건강이외에 더 많은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수완(전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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