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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미국에 대한 애증 - 김은섭

김은섭(교육인적자원부 감사관)

친구!

 

우리는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태어났지. 우리가 철이 막 들을 무렵 자네는 말했지. “고향은 내가 지킬테니, 객지에 나가 돈을 벌어 지독한 가난을 물리치라”고... 그 때부터 나의 타향살이는 시작되었고, 그 후 고향에 들를 때면 자네는 굳은살이 박인 내 손을 꼭 쥐고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한 밤 내내 이야기를 했지. 그젯밤도 여느 때처럼 그랬다네. 요즈음은 고향에서도 한미 FTA, 영어마을, 조기유학 붐 때문에 힘이 든다며 덧붙여 미국에 대한 사랑과 미움에 대해 말했네. 동감하네. 미국이라는 나라의 영향을 우리만큼 많이 받은 세대가 또 있을까?

 

미국과 우리의 관계는 시작부터 애증이 뒤섞여있지 않았나 싶네. 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첫발을 내딛기 위해 출항시켰던 제너럴 셔먼호는 대동강에 상륙하기도 전에 좌초됐고(1866년), 5년이 지난 신미년에 우리를 침공하여 강제 개항하려 했던 미군함대는 강화도에서 패하여 퇴각했었어(1871년 신미양요).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야 우리는 미국과 최초의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맺게 되었지(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제1조 “불공경모(不公輕侮), 필수상조(必須相助)”. 이후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지. 특히 미국 선교사들은 교육과 의료 사업으로 우리 민족을 일깨워 주웠어, 고향의 전주 신흥학교, 기전학교, 예수병원도 이 때 태동하였지. 그러나 선교사업과 국제정치가 항상 같지만은 않지. 많은 선교사들이 한일합방 전후 우리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데 반해, 미국정부는 일본이 조선과 만주를 지배할 것을 용인하겠다는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7)”을 극비리에 체결하여 조미수호통상조약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기도 했지. 그럼에도 결국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해방한 것은 미국이 일본을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싶네. 이후 한국전쟁과 계속되는 남북대치상황, 그리고 전후 경제난을 견뎌내고 경제대국 10위로 성장해 오면서 미국과 우리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네. 한 때는 우리의 절대적인 친구라고 믿었고, 한 때는 철저한 자국 중심적 행태에 서운해 하기도 했지.

 

친구! 자네는 심각한 표정으로 지금 또 다른 개항이 시작되었다며, 형태만 다르지 100년 전과 그렇게 비슷할 수가 없다고 했네. 다자간 무역협정인 WTO와 양자간 무역협정인 FTA가 시시각각으로 우리의 목을 죄어오고 있지. 무역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는 일대 위기가 아닐 수 없다고, 그러나 100년 전 상황이 피할 수 없는 것이었듯 지금의 상황도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자네는 말했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네. 미국과의 FTA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난 한 세기 동안 겪어왔듯 국제정치에서는 +도, -도 없네. FTA의 성사를 통해 얻는 것과 잃는 것, 얻는 사람들과 잃는 사람들이 있겠지. 그런데 지금 우리를 보게. 한 쪽에서는 잃는 것만이 많다고 하며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고, 한 쪽에서는 얻는 것만이 많다고 무조건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네.

 

워싱턴 DC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참전비가 서있지. 미국과 우리는 미군병사 52천명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혈맹의 우의를 변함없이 다져가야 할 것일세. 이것이 우리 자식들에게 굳은 살 없는 삶을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네.

 

/김은섭(교육인적자원부 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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