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다. 춥다. 겨울이니 추운 것이 당연한 거 아니냐고들 한다. 몸이 추우면 덩달아 마음도 춥다. 목도리를 두르면서 몸의 추위를 녹이면 마음의 추위도 같이 풀릴까? 인간의 심리가 그리 간단치 않다는 거, 요즘은 웬만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다 안다.
마음의 추위, 상처는 정말이지 오래가고 흔적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니 가능하면 안 다치게 예방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마음에 찬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연일 보도되고 있는 경제난 소식에 여기저기 문을 닫고 있는 상가들, 공장들, 못살겠다며 눈물짓는 시장 사람들, 애써 가꾼 농작물과 과일을 트랙터로 갈아엎는 사람들, 12월 들어 연구실로 걸려오는 복지단체의 전화까지, 정말이지 너무 춥다.
1929년의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난이 올 수도 있다는 소식에는 뜬금없이 "분노의 포도" 라는 영화의 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추위까지 떠오른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를 더욱 더 춥게 만드는 것은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장관은 경상수지의 흑자를 이야기 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어려울 때 일수록 국민 모두 합심해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요구한다. 도처에 모순이 난무한다. 국가와 국민 간에 상식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국민은 국가를 위해 애국심을 발휘한다." 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각자 따로 놀고 있는 모순 속에서 신뢰는 상실되고 공동체 의식은 깨져버려 새벽시장의 불쌍한 할머니를 보고 눈물 난다, 앞으로 열심히 기도하겠다는 장면을 보고도 많은 네티즌들은 악어의 눈물 운운하며 메주는 콩으로 만든다 해도 믿지 않는 판국이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가에서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합심하자고 하지만 각자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걱정만 눈덩이처럼 커진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어느 개그맨의 표현을 빌리자면 "난 경제를 살리겠다는 사람에게 투표했을 뿐이고", "난 이 추운 겨울에 꽁꽁 언 몸과 마음을 녹일 길이 없어 눈물지을 뿐이고~" 식이다. 국가와 국민 간에 상호적 공정성이 깨져버린 곳에서는 최선을 다해 합심하는 자발적 시민행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것은 인간심리의 원초적인 이기(利己)다. 국가와 국민 간에 적어도 최소한의 상식이 무너지지 않아야 서로 더불어 잘 살아보고자 하는 구심점에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다. 심리학 용어에 현실검증 능력이란 것이 있다. 이는 현실에 대한 판단력으로써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이 실재와 같은지 다른지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자신의 생각이 곧 현실이라고 믿고 우기면 어찌 될 것인가.
자신과 자기 집단의 생각이 실재와 다를 때 이를 수용하고 경청할 수 있는 판단력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의 기본이요 위험한 집단극화나 집단사고(Group Thinking)를 범하지 않는 능력이다. 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잠깐 보여주는 눈물이나 춥다고 건네주는 목도리도 중요하겠지만 진정 필요한 것은 믿음이 가는 사고와 실천하는 행동일 것이다. 사랑하는 국민이 추위에 홀로 눈물짓고 있는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의 제시가 모두에게 진정한 방한복이 될 것이다.
/박영주(우석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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