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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사람 사는 똑같은 곳

여행 다니듯 서울가보니 친구들이 전주한옥마을에 열광하는지 알 것 같았다

▲ 박형신 우석대신문 문화부장
시험기간에는 어쩐지 딴청을 피우고 싶어진다. 무려 신문의 경제기사도 재밌다. 1면의 큰 기사부터 텔레비전 프로그램 소개 기사까지 꼼꼼히 읽은 뒤 다시 전공서적을 편다. 필기하려고 연필을 잡았더니 글씨를 쓸 때마다 손톱이 거추장스럽다. 일단은 손톱부터 손질하고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나는 본격적으로 손톱을 다듬고 매니큐어를 바르는 것도 모자라 여행사진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10월에 다녀온 여수, 순천 여행사진을 정리하다 사소한 기억이 떠올랐다. 이렇게 되면 이제 공부는 뒷전이다.

 

서울 사는 친구와 여수의 유명한 장어탕 식당에 갔을 때였다. 친구는 식당에 들어서며 대뜸 서울에서 왔으니 많이 달라고 했다. 나는 서울에서 오지 않았으나 부끄러워서 가만히 있었다. 그저 친구가 넉살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장어탕을 배불리 먹고 난 뒤에는 돌산대교에 가기로 했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지금 돌산대교는 못 간다고 딱 잘랐다. 마침 태풍이 여수 바다를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라남도는 말투부터 무척 달라서 우리는 말을 할 때마다 이방인이라고 광고하는 꼴이었다. 나는 충남 논산에 살았지만 주춤주춤 하다가 서울이라고 대답했다. 무언가 굉장히 찝찝하고 이상한 기분이었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무엇을 놓치고 지나간 느낌. 아무튼, 우리는 돌산대교에 내렸고 태풍에 가로등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느낌은 부끄러움이었다. 우리 동네가 아닌 서울을 발음한 순간 스스로 지방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었다.

 

나는 같은 동네에 살다가 천안으로 이사 간 친구가 동네를 가리켜 시골이라고 할 때마다 뜻 모를 화가 나곤 했다. 시골이라는 단어에서는 촌스러움이 느껴졌고 불편함, 동떨어진, 뒤늦은 등의 이미지가 차례로 떠올랐다. 나는 몰래 그 친구의 험담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뒤늦게 시골의 뜻을 찾아본 일이었다. 시골의 뜻은 고향을 떠난 사람이 고향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었다. 또, 나는 서울에 무슨 공연이나 전시가 있을 때마다 자주 들락거렸다. 거리낌 없이 용산행 기차에 오를 때마다 내가 덜 촌스럽고 오히려 멋진 문화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컸다. 유행이 퍼지는 속도가 그랬고 교통수단이 지금처럼 편리하지 않아 서울을 자주 오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서울뿐 아니라 전 세계의 예술, 문화, 패션, 문화의 최신을 인터넷으로 빠르게 접한다. 또 도로와 다양한 교통수단은 서울과 부산의 거리까지 2시간 이내로 줄였다. 바야흐로 전국 어디든 반나절이면 충분히 오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느끼는 이 서울에 대한 동경은 뭘까.

 

여행 다니듯 오가다 보니 서울을 추억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추억은 좋지 않았던 순간들은 나도 모르게 지워버리고 즐거움과 행복만 남겨놨다. 그래서 시간 관계없이 붐비는 지하철 2호선의 짜증도, 볶음밥 맛집을 찾아 헤맸던 한여름 마포의 아스팔트 열기도, 새벽 홍대 앞의 택시 승차거부도 기억 속에 봉인되어 있었다. 이것들은 내가 논산에 살며 느끼는 불편함에 비하면 어마어마했다.

 

아, 나는 비로소 서울 사는 친구가 그 많은 재미를 내버려두고 오직 학교와 집만을 오가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겨우 한 두정거장 차이를 줄이기 위해 출근 루트를 다시 짜는지, 전주 한옥마을의 밥집들과 객사의 커피집들에 열광하는지 알 것 같았다. 서울이든 전주든 논산이든 다 사람 사는 동네라 똑같다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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