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는 ‘인연(因緣)’이라는 말을 두고, 인(因)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이고 연(緣)은 그를 돕는 것이라 하였다. 문화나 종교를 떠나 사람은 그러한 인과 연에 의해 짜인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이나 과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속에서 인연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여산은 옛~고을 호남의 첫 고을 그 역사 몇~천년 나리어 오면서...”
익산 여산면 출신인 가람 이병기 선생은, 고향에 있는 여산초등학교를 위해 교가 가사를 남긴 바 있다. 몇천 년을 이어온 역사의 끈이 곧 ‘나와 우리 고장을 이어주는 인연’이라는 가사는 우리로 하여금 지역과 연결된 인연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다. 인연 이야기로 남녀 사이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이 인연으로 맺어지고 늘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매년 칠월칠석 일 년에 단 한번만 볼 수 있다는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병기 선생의 생가가 있기도 한 이 여산의 옆, 익산시 금마면에도 고려 때로부터 천년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가슴아린 인연 이야기가 있다.
1번국도를 타고 시인 신동엽이 “마한, 백제의 꽃밭”이라고 일컬은 금마면을 향할 때 우리는 백제의 찬란한 문화유산이 남겨진 왕궁리 유적지에 시선이 뺏겨 옥룡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석불 2기를 지나치기 십상이다. 바로 고려시대의 석조여래입상으로 두 개의 석불이 하나의 쌍이어서 ‘쌍석불’로도 불리는 석상이다. 사람과의 인연도 있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도 인연으로 엮여져 있다는 피천득의 인연의 문구가 강하게 떠오르게 하는 모습이다. 고려시대 말엽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두 석불은 부르면 들을 수 있지만 맞닿을 수는 없는 가깝고도 먼 200m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하나의 이름을 지니고도 가깝고도 먼 지척에 서로를 바라보고 있어 더욱 그 사연을 궁금하게 한다. 석조여래 입상은 각각 동고도리(여자)와 서고도리(남자)인데, 평소에는 만나지 못하다가 음력 12월 섣달 그믐날 밤 자정에 옥룡천이 꽁꽁 얼어붙으면 서로 만나 사랑을 나누고 새벽닭이 울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옥룡천이 얼지 않아도 만날 수 있도록 다리가 놓여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곧 찾아올 섣달 그믐날 그들의 만남이 기다려진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 철종 9년(1858)에는 익산 군수로 부임해 온 최종석이, 당시 쓰러져 방치되어 오던 석조여래 입상을 현재의 위치에 일으켜 세웠다고 한다. 그 때 씌어진 《석불중건기》에 적힌 내용에 의하면, “금마는 익산의 구읍자리로 동·서·북의 삼면이 다 산으로 가로막혀 있는데, 유독 남쪽만은 터져 있어 물이 다 흘러나가 허허하게 생겼기에 읍 수문의 허를 막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또 일설에는 “금마의 주산인 금마산의 형상이 마치 말의 모양과 같다고 하여 말에는 마부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마부로서 인석(人石)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남녀간 사랑의 전설과 풍수적 의미를 동시에 전하고 있다.
임실군 덕치면 천담 섬진강에도 이야기 하나가 전해진다. 이곳에 서 있었던 동자바위의 사랑 이야기가 그것이다. 옛날 마을의 사냥꾼 총각이 어느 날 뒷산에서 꿩을 발견하고 화살을 쏘았는데, 그 화살은 꿩을 맞춘 채 두꺼비나루 건너 산기슭에서 나물을 캐던 처녀 앞에 떨어졌다. 그런데 한참 꿩을 찾던 총각은 이윽고 꿩 앞에서 파랗게 질려있는 처녀를 쳐다보고 한눈에 반하게 된다. 집으로 돌아와 몇 날 며칠 처녀를 못 잊던 총각이 두꺼비나루를 건너 결국 처녀에게 가려고 했을 때 마침 맑은 하늘에 뇌성벽력이 일어나고 광풍이 일어 두꺼비나루를 건널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리움에 시름하던 총각은 병이 들어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그렇게 총각이 죽은 날 밤 천지가 진동하고 광풍이 일었는데, 날이 밝자 총각이 살던 마을 앞에는 놀랍게도 생시의 총각모습을 닮은 동자바위가 생겨나 있었다. 그리고 같은 날 두꺼비나루 건너에는 동자바위와 마주 보이는 곳에 여자를 상징하는 바위가 생겨났는데, 이는 역시 총각을 그리워하던 끝에 한날한시에 죽게 된 여인의 바위였다. 그 후 남편이 부인을 싫어할 경우 동자바위에서, 부인이 남편을 싫어할 때에는 여인바위에서 돌을 쪼아 가루를 만들어 몰래 상대방의 음식물에 섞어 먹이면 사이가 다시 좋아진다는 설이 전해져 사람들이 돌을 쪼아가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늘날 아쉽게도 여인바위는 도로공사로 인해 흔적이 사라진 상태이고, 동자바위 역시 이야기만을 남긴 채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근처 순창 장군목의 요강바위는 1993년 도난을 당했다가 다시 찾았다고 하는데, 사라진 동자바위는 우리에게 돌아올 수 없을까. 찾을 수 없다면 그 이야기와 모습을 살려 복원함도 좋을 듯하다.
가까운 듯 먼 거리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고도리 석조여래 입상과 동자바위 이야기를 떠올리며 인연의 의미를 곱씹어 본다. 서편의 남자 석조여래 입상은 의연히 웃고, 동쪽 석조여래 입상은 배시시 화답하는 통에 전설 속 안타까운 인연에도 그들은 괜찮다고 도리어 우리를 위로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것이 사람의 인연이든 물성에 의한 것이든 시간이 깃들고 사연이 담긴 인연은 언제나 우리 마음을 끌어당긴다. 늘 곁에 있다가도 한순간 사라지기도 하는 인과 연에 대해 돌이켜 보고 좋은 인연은 잘 보듬고 나쁜 연은 흘려 보낼 줄 아는 것이 세상을 사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 /윤주 한국지역문화 생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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