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외부기고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115)우영우 팽나무 vs 수동리 팽나무와 마을 숲

우영우 팽나무 /사진제공=문화재청
우영우 팽나무 /사진제공=문화재청

 “어린 시절 저 나무 타고 안 논 사람이 없고, 기쁜 날 저 나무 아래에서 잔치 한 번 안 연 사람이 없고, 간절할 때 기도 한 번 안 한 사람이 없죠”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하는 대사이다. 마을 어귀 오래된 나무와의 추억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마을 이장의 말이다. 도로 건설로 빚어지는 갈등을 천연기념물이 되면서 해결하는 일명 우영우 팽나무를 보며 고창 수동리 팽나무와 사연을 품은 노거수들이 떠올랐다. 

 우영우 팽나무가 있는 곳은 ‘소박하지만 덕이 넘치는 마을’인 경기도 소덕동으로 설정되었지만, 실제 그 팽나무가 있는 곳은 창원시 대산면 북부리이다. 수령 500년으로 추정되는 ‘창원 북부리 팽나무’는 마을과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서 있다. 수세가 좋고 수형도 아름다워 2015년 창원시의 보호수로 지정되었지만, 문화재청에 공식으로 지정 건의가 없어 그동안 천연기념물 검토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동리 팽나무처럼 마을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당산나무이다. 

 

고창 수동리 팽나무
고창 수동리 팽나무

 5월 즈음에 꽃이 피는 느릅나무과의 팽나무는 콩처럼 생긴 작은 열매가 달다. 그래서인지 ‘단맛의 열매가 열리는 나무’라는 라틴어 ‘겔티스(Celtis)’에서 유래된 학명을 쓰고 영문도 ‘슈거베리(Sugar berry)’이다. 열매가 달아 즐겨 먹고 새들도 좋아하지만, 팽나무는 아이들이 열매를 딱총처럼 갖고 놀며 생겨난 이름이다. 대나무 대롱에 팽나무 열매를 넣고 꼬챙이를 꽂아 공기의 압축을 이용해 탁!치면 ‘팽~’하고 날아가며 소리가 나 그 나무총을 ‘팽총’이라 하고, ‘팽나무’라는 이름도 붙었다고 전해진다.

 목수과자, 평나무, 포구나무 등 다양하게 불리며 한자어로는 박수(朴樹), 박수(樸樹), 자단수(紫丹樹) 등으로 쓰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잘 자란다. 우리 선조들은 5리마다 오리나무를 심어 길의 이정표로 삼았는데, 중국에서는 회화나무를 심었고 일본에서는 1리마다 팽나무를 심었다. 일본에서는 이정목으로 소나무를 심었으나, 개미 등 병충해로 소나무가 잘 죽자 팽나무로 대신하며 귀하게 여겼다고 전해진다.

 또한, 팽나무는 풍요를 기원하는 신목(神木)으로 이삭이 패고 꽃이 핀다는 의미로 이름 붙었다고도 전해진다. 예로부터 풍수지리에 따라 부족한 기운을 채우기 위해 비보림으로 심거나 바람을 막기 위해 방풍림으로 심은 까닭에 붙은 설인 듯하다. 고창 수동리 팽나무도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신성시한 당산나무이다. 

 수동리 마을의 앞바다를 간척하기 전에는 팽나무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배를 묶어 두었던 나무로도 알려져 있다. 해풍과 습기에도 강한 성질의 나무인지라 오랜 세월 든든하게 마을의 중심 역할을 했다. 매년 팔월 보름인 추석이 되면, 팽나무 앞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줄다리기 등 민속놀이를 하며 당산제를 지냈다. 수령이 약 400년으로 추정되는 수동리 팽나무는 수세가 좋고 수형이 늠름하고 아름다운데다 지역의 삶과 오랫동안 함께한 역사성 등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반면, 고현(古縣)의 아래에 있어 하고(下古)라 불리는 마을에는 전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지만, 천연기념물이 되지 못한 마을 숲이 있다. 천변에 자리한 ‘하고리 왕버들나무 숲’은 고지도에도 그 위치가 특정되는데, 왕버들보다는 능수버들 군락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지역의 켜를 오랜 세월 층층이 품고 아로새긴 마을 숲이지만, 몇 해 전 문화재청에 천연기념물로 지정 건의 후 심의를 받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고창 하고리 왕버들나무숲/사진제공=고창군청
고창 하고리 왕버들나무숲/사진제공=고창군청

  그 이유야 어떻든지 간에, 선조 때부터 특별한 사연을 지닌 마을 숲에 자긍심이 있던지라 주민들이 상심이 컷다고 한다. 하고리는 여러 성씨가 살며 자리한 고장으로 고려 시기 무송의 삼정승을 지낸 윤(尹)・유(庾)・하(河)씨가 살았다 하여 ‘삼정승의 명당 전설’이 깃든 곳이다. 마을 뒷산은 천문 별자리인 삼태성(三台星)을 빗대어 산 이름을 ‘삼태봉’이라 하고 마을도 ‘삼태’라 불렀다.

 삼태성은 왕의 자리인 북극성을 호위하는 별자리로,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 물을 담는 쪽에 길게 비스듬히 늘어선 세 별로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과 비유해 삼공의 지위를 삼태성이라고 한다. 천하의 태평성대를 주관한다고 여겨 선조들은 삼태성이 밝아지면 태평성대를 누린다하여 중요하게 살핀 별자리이다. 그런 귀한 기운을 지닌 삼태마을이지만, 풍수지리상 학 혹은 떠 있는 배의 형국이라 한다. 

 그런 까닭에 마을에서는 우물을 파지 않고 하천의 물을 길어다 사용했다고 한다. 우물을 파게 되면 배의 형국이 가라앉게 되어 마을의 운이 다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운을 보하기 위해 나무를 심어 삼태천 둑도 보호하고 마을의 안녕을 위해 정성을 다했다고 한다. 또한, 수동리처럼 오래전에는 이곳 삼태천까지 배가 들어와서 정박한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배를 메어 놓기 위해 나무들을 심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천변에는 200년에서 300년 된 왕버들나무를 비롯하여 팽나무, 소나무 등 백여 그루의 나무숲이 마을을 호위하며 풍파를 막아 주듯 촘촘하게 자리하고 있다. 

 오래된 나무는 든든하고 때론 경이롭다. 드라마에서 우영우가 팽나무를 보며 “볼 때마다 이 나무는 참 멋집니다”라고 담백하게 표현했고, 드라마의 선한 나비효과가 천연기념물과 노거수에 대한 관심도 일으켰다. 하지만, 우리 곁에서 너른 품을 내어주는 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 않고 생멸하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랜 세월이 담긴 유산을 후손에게 전해줄 의무 또한 지금의 우리에게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전북현대전북현대, 세부 잡고 ACLT 16강 진출...여세 몰아 승강 PO 승리 간다

오피니언[병무상담] 병력동원소집 보류대상자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합니다

오피니언난 웹툰 작가이다 4

오피니언점술사의 시대

정치일반전북 핵심 사업들 '성장 동력'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