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정의로 일어선 민군(民軍)으로서 우리 민족의 국수(國粹·국민이 가진 고유한 장점)’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백암 박은식 선생(1859-1925)이 ‘의병’에 대해 한 말이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정치·경제적 침탈을 자행하자 일반 백성들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의병으로 나섰다. 박은식 선생은 정의와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의병 항쟁을 높이 평가했다. 그중에서도 전라도 의병 활동에 대해 “각 도의 의병을 말한다면 전라도가 가장 많았는데, 아직까지 그 상세한 사실을 얻을 수 없어 안타깝다”고 평가했다. 스러져 가는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지만, 제대로 된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아 후손들에게 잊혔던 전북 의병. 전북 의병을 찾는 재조사 작업이 시작돼 831명의 명단이 새롭게 드러나며 이들을 위한 신원 회복의 첫걸음이 시작됐다.
△ 잊혔던 전북 의병
한 전북지역 의병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1906년 동지 36명을 규합해 무주·용담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하고 1908년 1월 고창으로 출군해 적 43명을 사살하고 총기류 50정을 포획했다. 그는 호남의병단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고, 최후에는 자결한 것으로 전해진다.’호남의병단 중군장이었던 전성보(全誠輔)의 이야기다. 전성보의 이야기는 최근까지 문헌 속에서만 잠들어있어 어떠한 포상이나 훈격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말 의병은 1895년부터 1915년 전후까지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약 20년 동안 무장투쟁을 전개한 이들을 말한다. 이 중 전북 의병은 동학농민혁명의 후유증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늦게 시작됐으나, 임병찬·고석진 등을 비롯한 최익현 문인들의 주도로 태동해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의병 대열에 동참했다. 특히 1909년 전라도 의병들은 일본 군경과 교전 횟수 및 교전 의병 수에서 전국 대비 47.2%와 60%를 차지할 정도로 치열하게 활동했다. 의병에서 독립군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국내의 비밀결사 운동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전북 의병의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전북 지역 의병운동에 대한 연구나 자료 발굴은 미약했다.
△ 전북 의병 재조사
후손에게 잊혔던 전북 의병을 찾는 작업이 시작됐다. 광복회 전북지부와 한국고전문화연구원 등이 한말 전북 의병들과 그 행적을 조사, 총망라해 책으로 엮으면서 전북 지역 의병 참가자 831명이 새롭게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
이들 단체는 지난해 8월부터 전북도의 지원으로 전북지역에서 발생한 의병 항쟁 역사의 재조명과 의병운동 참가자 신규 발굴, 의병항쟁 유적지 문화콘텐츠 활용 방안 모색 등을 위한 연구조사를 진행했다. 두 단체는 그동안 번역되지 않았던 각종 의병 자료와 일본 측 재판 기록 등 각종 문헌을 바탕으로 전북지역에서 의병운동에 참여한 이들의 인적정보를 자료화했다. 중간 성과로 각종 문헌 속에 잠들어있던 831명에 이르는 의병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들의 구체적인 인적사항과 활동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에 참여한 김건우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20여 종이 넘는 각종 문헌을 번역하고 그 과정에서 의병 참가자들의 자료를 추출해 나온 내용을 목록화했다”며 “우리나라 자료는 부족해 일본에서 발행한 ‘폭도에 관한 편책’을 번역하고 이곳에 기록된 의병들의 목록도 새로이 정리했다”고 말했다.
연구원들과 의병 참가자 명단을 확인하고 자료 정리 작업을 진행한 윤상원 전북대 사학과 교수도 “1910년 전후까지 의병 활동은 지속됐고, 이후 항일무장투쟁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며 “해방 이후 친일파 숙청 등 적폐를 청산하는 것과 독립유공자들을 선양하는 일. 두 가지가 가장 중요했는데 분단으로 인해 제대로 된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이라도 이렇게 의병들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어서 뜻깊다”며 “서훈 추서도 미흡한 부분이 많다. 국가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남겨진 과제
이번 연구로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은 421명의 전북 의병운동 참가자 이외에, 831명에 이르는 새로운 의병 참가자 명단이 정리됐다. 이를 통해 전북지역에만 의병 1252명이 의병 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으며 이를 근거로 미등록 국가유공자의 신원 회복을 위한 장도 열렸다. 또한, 연구를 통해 전북 지역 항일 의병 관련 유적의 화보와 지역별 의병활동의 현황을 수록하게 됐다. 의병 개개인의 활동 기록뿐만 아니라, 이들의 활동 무대였던 전북 지역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게 된 측면도 있다.
무엇보다 독립유공자를 발굴하는 작업은 우리 역사의 일부분을 되찾고 민족적 뿌리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역사의 주체로 활동했던 이들을 잊지 않고 기록하려는 열망이 있어야 한다.
이번 연구에 대해 조광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전북지역에서의 의병 활동은 가장 치열하게 전개됐지만, 그동안 이러한 의병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연구가 기존에 안타까웠던 상황을 타파하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연구로 전북의 의병은 이름 없는 민초에서 비로소 이름을 갖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연구를 진행한 광복회 전북지부와 한국고전문화연구원 등은 한목소리로 “이러한 자료를 통해 전북지역 의병운동 참가자의 신원 회복과 의병운동 관련 문화콘텐츠를 발굴하는데 노력할 것”이라며 “먼저 기초자료가 쌓인 의병 참가자들에 대해 공훈을 올리고, 보훈처 공훈록에 기록된 기존의 의병 참가자 자료 오류에 대한 점검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이강안 광복회 전북지부장 "의병정신 후대 전하고 공훈 인정받도록 노력"
“후손들의 역할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모든 애국지사를 찾고, 그 뜻을 기리는 데 있습니다”
광복회 전북지부장으로 이번 연구·조사에 힘을 쏟은 이강안 지부장의 말이다.
30여 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가문에서 태어난 이 지부장은 “동학농민혁명과 의병, 항일운동은 맥을 같이하고, 이는 4·19정신,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어져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이루는 데 큰 힘이 됐다”면서 “역사 교과서에 나와 있는 큰 줄기의 역사도 중요하지만, 지역에서 벌어진 항일투쟁사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강안 지부장은 “그동안 전북지역 의병의 활약상이 널리 알려지지 못해 안타까웠다”며 “체계적인 자료조사를 통해 의병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공훈을 인정받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임실 오수 출신인 이강안 지부장은 1970년 공직생활을 시작해 41년간 근무했다. 2008년 12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전주시 완산구청장으로 재직했으며, 근정포장 녹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지난 2016년부터 광복회 전북지부 지부장을 맡고 있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