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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에 소설 '혼불'을 읽어야 하는 이유

문지연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문지연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2020’이라는 낯선 숫자에 적응하는 사이 ‘설’이 코앞이다. ‘KTX 설 예매’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명절선물세트가 눈에 띄니 비로소 달력이 넘어간 느낌이다. 함께 윷을 던지며 놀던 사촌들은 대학, 취업, 직장, 결혼, 육아 등의 이유로 명절에도 보기 힘든 얼굴이 되었다. 차례, 성묘, 설빔, 세찬(설에 먹는 음식)도 간편화되고 사라지는 추세다. 대가족에서 4인 가구를 지나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요즘, 농경사회에 기반을 둔 ‘설’ 본연의 의미보다 ‘연휴’의 개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사회구조 변화와 가족 형태 다양화가 반영된 현상이지만, 세시풍속은 상대적으로 희미해지고 있다.

세시풍속을 비롯한 전통문화는 우리에게 여전히 어렵고 낯설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켜온 풍습은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개성’이 경쟁력인 시대에 독특한 무늬를 이루며 공유되어 온 ‘우리만의 것’은 소중한 자랑거리다. 한글문서 저장 아이콘의 실체를 몰랐던 청소년들이 플로피 디스켓을 사용했던 이전 세대와의 대화를 통해 의미를 알게 되고, 기억이 이어지는 것처럼, 청년들은 전통문화를 배워 다음 세대에게 전해줘야 할 책임이 있다. 비교적 쉽고 간편한 방법이 세시풍속이 담겨 있는 문학작품을 읽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작가 최명희(1947∼1998)의 소설 「혼불」이다.

‘며칠 전부터 집 안팎을 깨끗하게 치우고, 차례 올릴 준비를 하며, 식구들 설빔도 빠지지 않게 새로 지어야 하니, 이렇게 바쁜 날, 천하 없는 게으름뱅이라도 부지런히 일을 하여 설 준비를 해야 하는 그믐날, 누구라서 잠을 잘 수 있으랴. 그런데도 만약 잠자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눈썹이 하얗게 세어 버린다 했다.’(소설 「혼불」 5권 22쪽 중에서)

「혼불」에는 우리 고유의 생활풍속이 생생하다. 섣달그믐날 저녁이면 가족들이 둘러앉아 “무사태평”을 외치며 무를 베어 먹었다. 껍질과 속 안팎이 모두 희어 티 없이 깨끗한 무처럼 하는 일마다 순탄하고, 무 먹은 뱃속같이 속시원하라는 마음이다. 섣달 스무나흘에는 부뚜막 조왕단에 정화수를 올리고, “잘한 일만 고해 달라!”며 조왕신에게 빌었다.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이 하늘로 올라가서 그 집안에서 한 해 동안 일어난 좋은 일과 궂은 일,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낱낱이 고하는 날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정월대보름, 달을 맞는 풍경도 보인다. 달이 뜨고 달집이 타오르면 열두 발 상모에 꽃 같은 고깔을 쓴 농악대는 달집을 돌며 신나게 풍물을 울렸다. 아낙들은 달을 향해 소원을 빌고 남자아이는 정초에 날렸던 연을, 여자아이는 저고리에 달린 동정을 뜯어 달집에 던졌다. 책을 펼치지 않았다면 몰랐을 우리네 귀한 풍습으로, 역사의 한 줄이 아니라 살아있는 일상으로 다가온다.

문학은 인문학이고, 인문학은 문화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재미와 감동을 느끼고, 삶의 지혜와 통찰력을 얻는다. 덤으로 소중한 가치도 지켜나갈 수 있다. 다가오는 설, 고마운 이들에게 세배 다니는 틈틈이 묵은 책장의 먼지를 털고 책을 꺼내보자. 새해의 나날이 밝고 환하여 하는 일마다 순탄하게 되기를 비는 소박한 마음이 그곳에 있을 것이다. 설이 꽃봉오리처럼 화사해질 것이다.

/문지연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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