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있으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다. <기생충> 의 수상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하지만 이 열기에 가려져 충분히 주목받지 못한 영화가 있다. 바로 한국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오른 <부재의 기억> (In the Absence)이라는 작품이다. 부재의> 기생충>
세월호 참사를 다룬 이 29분짜리 다큐멘터리는 국내 관객에게는 익숙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처음부터 국내가 아니라 전 세계 관객을 대상으로 기획되었다. 작품을 만든 이승준 감독, 감병석 프로듀서 팀은 미국의 Field of Vision이라는 단편 다큐멘터리 전문 제작팀과 공동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이 결과 사건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담백한 기록물이 탄생했다.
사실 그 동안 외국인들에게 세월호 참사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게 왜 단순한 대형 참사가 아닌지.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는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이유도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는 최순실, 국정농단 같은 원인들을 열거해 보기는 하지만,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의 속뜻은 여전히 설명하기 난망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어려운 과업을 29분 안에 해낸다.
그리고 작품이 거둔 세계적인 성공은 한국인이 세월호 이후 느꼈던 분노와 실망이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임을 입증했다. 이 작품은 최초 공개된 뉴욕다큐멘터리 영화제(DOC NYC)에서 단편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세계보도사진협회(World Press Photo)에서 개최하는 디지털 스토리텔링 대회에서도 수상했다. 또한 미국의 저명한 주간지 뉴요커(New Yorker)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온라인 공개가 되었는데, 현재까지 조회 수 244만을 기록하고 있다.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와 당시 정권과 관료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댓글들이 국적을 가리지 않고 달리고 있다.
이제 한국의 다큐멘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전할 영상 언어와 실력을 갖추었다. 사실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극영화가 세계 시장에서 이룬 성과에 비해, 한국의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변방에 머물러 있었다. 서구 선진국 중심으로 짜여진 국제 다큐멘터리 시장에서 한국 작품들은 주로 ‘북한’에 대한 서구인들의 호기심을 채워주거나, K-pop과 같이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들을 소개하는 이상으로는 뻗어나가기 어려웠다. 그나마 최근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휴먼스토리들로 한국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의 폭이 조금 확장된 정도이다.
한국의 독립 다큐멘터리는 한국사회를 뒤흔들어온 정치·사회적인 문제를 탁월하게 다뤄온 오랜 전통이 있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이 세계 시장에서는 너무 로컬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외면 받아왔다. <부재의 기억> 은 이제 한국의 정치·사회적인 이슈들도 전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서구인들의 시각에 갇혀서 그들이 보고 싶은 것만 내놓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관과 언어로도 세계와 소통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부재의>
세계적인 담론에 끼어들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다면, 이제 우리는 한국의 어떤 이야기를 세계에 전할 것인가, 어떤 화두를 갖고 세계인들을 만날 것인가, 고민해볼 차례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부재의 기억> 을 찾아보면서 이런 고민을 함께 해보면 어떨까? 부재의>
<부재의 기억> 관람하기: https://youtu.be/5_A8dq2fA5o 부재의>
/박문칠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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