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팔복동에는 1979년부터 1991년까지 카세트테이프를 생산하던 공장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CD등 새로운 기록 매체에 자리를 내주고 폐업을 결정한 후 25년간 물리적, 사회적인 호흡이 멈춘 오래된 사진처럼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2016년부터 전주시와 전주문화재단이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여 ‘팔복예술공장’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 이 공간은 올해 계획 중인 야외 예술놀이터, 수변공간을 포함하여 전시실, 창작 스튜디오, 유아 예술놀이 공간 등을 보유한 다양한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고 2018년 3월 개관 이후 어느새 누적 방문객이 11만 명(2018-2019년)에 이른 전주의 대표적인 문화예술의 명소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유년기를 팔복동에서 보낸 필자는 어렴풋이 80년대의 팔복동의 느낌을 기억한다. 공단 굴뚝에서 끝없이 뿜어져 나오는 회색 구름, 철로 만들어진 낡은 놀이터와 기찻길, 공단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의 색바랜 유니폼. 흐릿한 유년기의 추억 등등. 상대적으로 열악한 주거환경을 가지고 있었던 전주시의 아픈 손가락 같은 팔복동이 문화와 예술로 덧칠한 도시재생의 메카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롭다.
이러한 팔복예술공장의 혁신적인 변화에는 많은 사람의 숨겨진 공로가 있기에 가능했다. 팔복동의 기억을 간직한 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팔복동 거주민들과 공간의 새로운 대안을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심했던 전주의 예술가들은 무엇보다 우리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팔복예술공장을 찾았다. 거기에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수용하려 노력했던 기획담당자들의 열정과 전주시의 낮은 자세가 더해져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내었다고 생각한다. 공간의 변화는 소수의 몇몇으로 인해 바뀔 수 없기에 마음과 뜻을 모은 모두가 이룬 성과라 표현하고 싶다.
하지만 끊임없이 성장 중인 팔복예술공장이 보완하고 갖춰야 할 부분은 아직 남아있다. ‘예술공장’이라는 이름답게 다양한 재료를 요구하는 거친 입체조형작업을 할 수 있는 다목적 창작 스튜디오의 부재와 유아로만 한정된 예술놀이 공간의 협소함은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충분히 개선이 가능한 점이다. 주차장의 좁은 간격도 공간을 찾는 시민들에게 불편함을 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을 하는 공간’의 목적성이 있는 곳으로서 다양한 예술 분야의 전문인력(도슨트, 스튜디오 테크니션, 어시스턴트)의 육성과 추가배치를 통해 예술공장을 찾고 이용하는 관람객과 참여작가들에게 더욱 나은 사유의 경험과 창작의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은 근무와 창작의 환경적인 측면에서 개선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올해 3월부터 팔복예술공장의 3기 정기입주작가로 참여하여 창작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몇 개월간 오가며 그동안 안에서 바라본 팔복예술공장의 모습은 바깥에서 바라본 시각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팔복예술공장을 위해 밤낮으로 고생하시는 팔복운영팀, 창작기획팀, 예술놀이팀의 직원분들의 노고가 더해져 이 공장이 돌아가는 모습에 측은함과 감사함을 동시에 느낀다. 이제 다음 주가 되면 입주작가로 들어온 지 딱 100일째가 된다. 10명의 입주작가와 작은 축하의 의미로 모든 직원분께 감사의 떡을 돌리기로 했다. 예전 이 공간에는 ‘써니(카세트 공장에서 일했던 여성 근로자를 상징하는 팔복예술공장의 마스코트)’가 공장의 불빛을 밝혔지만, 지금은 ‘여러분’이 계신다고 말하고 싶다. 어둑해진 밤, 팔복예술공장은 아직도 희망의 불빛을 킨 체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김성수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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