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죽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서 살아가는 후손들이 잘살고 못사는 것은 생전에 남들에게 얼마나 베풀었나에 정도에 따라 판가름되는 것입니다”
지난 9일 전북일보사 2층 우석대 공자아카데미 중국문화관 화하 관에서 열린 전북일보 리더스 아카데미 7기 11강에 나선 조용헌 칼럼니스트는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남에게 베풀면서 사는 인생을 강조했다.
그는 “수백억 원의 자산가들은 대부분 송사에 휘말리는 일이 잦으며 자기 재산을 지키려는 고심 때문에 매일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이룰 수 있는 불안하고 고달픈 인생을 살고 있다”며 “지나친 욕심은 오히려 화가되기 때문에 적절한 조절과 선행을 베푸는 인생을 살아갈 것”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과거 조선시대 명문가에는 ‘정 3품 이상의 벼슬을 하지 않는다’는 가훈이 있을 만큼 우리조상들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길흉화복을 조절했다”고 밝히며 7기 리더스아카데미 1학기 마지막 강의를 마쳤다.
곧바로 이어진 원우의 시간에는 서거석 전 전북대 총장이 ‘사람을 품는 교육“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치며 신문배달 소년에서 국립 대학교 총장이 되기까지의 인생역정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가난한 생활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가지 못하고 책가방 대신 아이스케키 판매통을 들어야 했던 그해는 13세의 어린 소년에게는 너무나 잔인한 봄이었다.
자연스럽게 학교밖 불량소년들과 어울린 생활은 어머니에게 큰 실망감을 줬고 어머니의 눈물을 본 소년을 많은 반성을 하게됐다.
그러던 중 1세대 민주투사로 알려진 전주 남문교회 은명기 목사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중학교에 입학했고 신문배달과 매점 알바 등으로 학업을 이어갔다.
매점에서 당시 신흥 고에 다니며 역시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알바를 하고 있던 정세균 총리를 만나 많은 위안과 용기를 얻기도 했다.
전북대 법대에 진학한 그는 사법시험 보다는 교수의 권유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됐고 후학을 양성하는 학자의 길을 걸어왔다.
수많은 노력 끝에 2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법대 교수가 된 서거석 전 총장은 인생의 황금기를 맞았지만 행복도 잠시, 결혼 3년 만에 배우자가 시내버스에 치어 1년의 입원과 후유증으로 10여년 고생하게 되면서 육아와 가사 살림을 도맡게 됐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몸을 회복한 배우자의 내조 덕분에 학교일에 충실할 수 있었고 법대 학장을 거쳐 지난 2005년 전북대 총장에 당선된 그는 낙후된 전북의 ”열악한 상황에서 대학만이라도 우뚝 서자“는 신념으로 전북대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노력했고 지난 2013년 전북대가 우수대학 평가에서 부산대학교를 능가하는 기적을 이뤘다.
서거석 전 총장은 ”경제적 불평등이 교육의 불평등을 낳고 다시 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게 현재 교육의 현실“이라며 ”인성교육과 자기소질과 자질에 맞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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