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책의 도시’가 가야할 길

천세진 인문학 칼럼니스트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천세진 인문학 칼럼니스트

전주의 도서관들이 속속 독서 친화적 문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이전의 도서관들은 서가들이 좁게 배치되어 있었고, 독서공간도 편안하지 않았다. 2019년 12월 문을 연 꽃심도서관은 책을 고르는 것도, 읽는 것도 편안하고 여유 있는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2017년, 전주를 ‘책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전주시의 선언이 도서관 인프라를 새롭게 구축하고 확장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더없이 반갑다.

문화는 공간이 있어야하니 도서관 인프라 구축은 ‘책의 도시’를 만들기 위한 선결 요건이다. 공간이 먼저 존재해야 그 안에서 시민들과 책이 만나 수준 높은 사유가 탄생하고,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다음 수순으로는 다양한 장르의 많은 책을 갖추는 것이지만, 책의 확보를 양적으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 전주의 시립도서관 12곳 중 10곳을 이용하는데, 가장 안타깝게 느낀 것은 양보다는 도서의 편중과 질적 문제였다.

공간을 특징짓는 구성요소가 채워지면 문화는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할 수 있지만, 그렇게 탄생한 문화는 질적 수준을 따지기 어려운 지점에 머물기 쉽다. 한 문화공간을 대변하는 특징적 콘텐츠나 사물이 양적인 확보를 넘어서서 질적인 측면에서 최고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손길이 필요하다.

도서관 인프라 구축은 선결 요건이지만 고품위의 독서문화를 보장하진 못한다. 고품위의 문화는 결국 질 좋은 책의 선정과 향유에서 결정된다. “당신이 읽는 책을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줄 수 있다.”는 독서가들의 경구는 결코 개인적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도서관이 어떻게 도서를 선정하고, 어떤 책을 구비하는지에 따라 한 도시의 독서문화 수준과 문화적 사유의 수준도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업 작가 생활을 시작하며 블로그 활동을 함께 시작했는데, 책에 대한 글을 올리는 블로거들의 글을 주로 찾아 읽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여전히 한국인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고, 질적인 측면에서도 편향된 독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후 오프라인과 온라인 독서회를 만들어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좋은 책을 어떻게 고르고 음미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른 분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지만 여전히 책의 질적 문제에 대한 답을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책의 질 문제를 음식문화로 이해해보자. 음식은 고급과 저급이 무게로 결정되지 않는다. 같은 무게의 식재료라도 질에 따라 가격은 현격히 차이가 난다. 자녀들이 원해서 패스트푸드를 주기도 하지만, 정말로 주고 싶은 것은 슬로푸드다. 그런데 책의 세계에서는 그 방식이 채택되지 않는다. 좋은 책도 나쁜 책도 동일하게 책의 페이지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고, 내용을 살피지 않고 광고에 현혹되거나 디자인과 제목만 보고 결정하는 경우도 많다. 책을 고르는 것은 음식을 고르는 것보다 더 심도 있는 이해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음식문화를 경험한 사람이 음식의 가치에 대한 이해가 높은 것처럼, 책의 가치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두루 깊게 읽어 본 사람의 이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책의 도시는 멋진 도서관을 갖는 것이 종착지가 아니다. 책 읽기 좋은 멋진 도서관을 만들었다면, 그 다음으로 전문가 중심의 도서선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좋은 책들을 선정하고, 도서관을 통해 수준 높은 독서문화가 만들어지도록 지원하는 구조가 정착되어야 한다. /천세진 인문학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정부尹대통령, 6시간만에 계엄 해제 선언…"계엄군 철수"

정부尹대통령 "국무회의 통해 계엄 해제할 것"

국회·정당우의장 "국회가 최후의 보루임을 확인…헌정질서 지켜낼 것"

국회·정당추경호 "일련의 사태 유감…계엄선포, 뉴스 보고 알았다"

국회·정당비상계엄 선포→계엄군 포고령→국회 해제요구…긴박했던 15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