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세계 최장의 방조제 건설로 시작된 새만금 사업이 첫 삽을 뜬지 30년이 지났다. 새만금에 대한 비전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전북도민들은 한결같이 새만금이 전북경제를 살릴 것이란 부푼 꿈을 꿔왔다. 하지만 새만금은 전북의 애물단지가 됐다. 비슷한 시기에 추진된 인천 송도가 국제도시로 성장하는 것과 반대로 새만금은 여전히 허허벌판이다.
30년 동안 정부가 바뀔 때마다 새만금은 대통령 전북 공약사업 1순위였고, 지방선거에서 도지사 정책공약 1순위였다. 10명의 전북 국회의원들 역시 지역구와 무관하게 새만금을 모른채 할 수는 없는 상황까지 왔다.
새만금은 제자리에 있는 동안 8명의 대통령이 집권했고, 9번째 대통령을 맞았다.
노태우,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는 전북하면 새만금을 떠올리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지만, 실제는 '찬밥신세'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이 “새만금 사업을 종결지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현 정부 차원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이제 도민들은 새만금 사업에 기대를 걸면서도 한편으로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정치인들이 오해를 불식시킬 방법은 사업에 속도를 내 새만금에 희망을 불어놓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전북 국가예산 블랙홀 된 새만금
새만금 사업기간이 길어질수록 역설적으로 전북의 다른 신성장 동력에 쓰일 자본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변했다.
도민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전주 등에 새만금 예산의 절반만이라도 투입됐다면 도시의 발전 양상이 많이 달랐을 것이란 한탄 섞인 이야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새만금은 국가 차원의 사업이지만, 전북의 지역사업으로 인식되면서 추진이 늦어지고 있다. 새만금개발청과 개발공사가 설립됐음에도 사업의 추진은커녕 기관을 둘러싼 다른 논란들만 번지고 있는 양상이다.
새만금 개발이 장기화하고 표류하는 것은 전북도민들의 삶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새만금은 정부가 직접 책임지고 완료할 사업임에도 지방정부 주도의 사업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실제 전북도가 1000억 원 이상의 큰 사업의 예산을 요구하면 중앙정부와 정치권은 “새만금에 이미 많은 예산을 신경써주지 않았냐”는 논리를 펴고 있다.
△속도감 있는 새만금 개발
새만금 사업 추진에 걸림돌은 정부의 '의지 부족'이라는 외부적 문제와 '환경 논란'이라는 내부적 문제에 기인한다. 특히 내부적 문제는 각 진영 간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미 2050년 사업 완료를 목표로 한 새만금 사업이 제대로 마무리돼야 이 지역을 둘러싼 여러 논란 역시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새만금 기본계획에는 2050년 사업 완료를 목표로 실현 가능한 단계적 개발 로드맵을 마련했다. 기본계획에서 구상한대로 개발이 이뤄질 경우 오는 2030년까지 2단계 사업을 통해 78%까지 개발을 마쳐 정주 인구 15만 명의 세계적인 저탄소 에너지 자립 도시 기반이 조성될 계획이다. 2050년 100% 사업 완료 시 새만금 내 정주 인구는 27만 명에 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상 2030년까지 대부분의 새만금 매립과 개발이 이뤄지는 것이다. 27만 명이라는 인구는 전북 제2도시인 익산시 인구와 맞먹는 수치다. 2030년에는 적어도 인천 송도까진 아니더라도 랜드마크와 쇼핑시설, 국제학교, 산업 시설이 집적화 된 국제경제도시로 거듭나야 한다는 의미다.
△꼬인 실타래부터 풀어야
새만금 사업의 속도전은 당장 눈앞에 놓여있는 실타래부터 풀어야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도내 국회의원들은 앞으로 3~5년 새만금 핵심 기반시설의 정상추진에 힘을 실어야 한다.
군산이 지역구인 더불어민주당 신영대 의원은 “30년 전 20대 시절 생각한 새만금은 완공만 되면 천지가 개벽할 줄 알았고, 새만금이 전북발전의 견인차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매립도 미약한 수준이다”면서 “기존에 설정한 큰 담론만 갖고 새만금 개발을 진행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상황이다. 현실감 있게 가능한 과제부터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만금 4대 현안 속도전·정상화 시급
새만금 발전의 전기를 마련할 4대 현안은 답보상태에 있거나 기대만큼의 규모를 만들지 못했다. 당장 해결해야 할 새만금 4대 현안은 △새만금 국제공항 △새만금 신항 △SK데이터센터 △세계잼버리 대회 등이 꼽힌다.
새만금 국제공항은 전북이 항공 오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인프라다. 새만금 국제공항을 독립된 민간공항으로 조속히 건설해 항공 인프라를 탄탄하게 구축하는 길이 새만금 개발 정상화의 첫 단추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새만금국제공항 건립문제가 도처에서 암초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국정감사 과정에서는 새만금 국제공항에만 유독 깐깐한 국가 재원조달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국토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수흥 의원(익산)은 국토부 장관에게 “전남 무안공항, 청주공항, 양양공항 등 다른 지역 공항의 경우 전액 국가재정이 투입돼 건설되는데, 유독 새만금국제 공항만 한국공항공사의 투자 참여(사업비 20%)를 허용하면서 향후 경기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추진 일정이 늦춰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고 꼬집었다.
새만금국제공항 건설사업비 8000 여 억원 중 한국공항공사가 20%인 1600억원 가량은 부담해야 하는데 최근들어 코로나19로 재무건전성이 나빠진 공항공사가 안정적인 사업비 조달을 못하는 상황도 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항공사가 새만금국제공항 터미널 건설 비용을 부담해도 현행법상 공항시설이 국가에 귀속되기 때문에 (공항공사가) 자율적으로 서비스 개선을 할 수 없어 효율적인 공항 운영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빨라야 오는 2029년으로 예정된 개항시기도 앞당겨야 한다.
새만금 신항의 경우 타 지역과의 차별정도가 더하다. 새만금신항만은 2025년 개항을 앞두고 있으나 정작 중요한 항만경제특구는 2030년까지 매립 계획이어서 신항만 개발 일정에 엇박자가 나고 있다. 새만금신항만 개항에 맞춰 항만경제특구를 국가재정으로 조속히 매립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30년 간 인천항, 평택항, 목포항, 울산항, 부산항, 광양항 등은 각 지역에서 국가거점 항만으로 성장한 데 반해 새만금 신항은 첫발을 떼지도 못했다. 또 새만금 신항의 성과를 가늠할 군산항의 쇠퇴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SK데이터센터의 송배전 문제도 빠른 해결이 요구된다. 이 사업은 2조 원 이상의 자금이 투입되는 민간사업으로 새만금의 첫 대기업 투자다. SK의 문제와 전제조건인 수상태양광 사업 정상화, 전북도와 전북정치권이 올인하는 배경도 대기업 투자의 선순환 구조를 이루기 위해서다. SK데이터센터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직접 막힌 곳을 뚫어줘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새만금에서 열리는 세계잼버리 대회는 새만금을 전 세계에 알릴 아이디어로 기획됐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했다. 당장 내년 개최 예정인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성공해야 국제공항과 신항 조성 사업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김관영 지사가 부임 이후 첫 해외 출장에서 잼버리 대회 홍보에 주력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 있다. 새만금잼버리 역시 새만금을 둘러싼 다른 사업들처럼 일부 단체의 반발에 놓였지만, 전북도와 전북도의회, 여성가족부는 잼버리 추진에 적극 협조한다는 방침이다.
새만금 미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이들 현안이 풀려야 오랫동안 지속돼 온 낙후와 소외로 인한 전북도민의 피해의식도 완화될 수 있다. 항상 정치인들의 희망고문용 아이템이던 새만금이 이제는 성공과 승리의 경험이 더 많이 축적해 ‘전북도 할 수 있다’는 긍정의 DNA가 확산하는 희망의 불씨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끝>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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