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 사람과 똑같아. 시원한 새 이불 깔아주니 쟤들도 신나서 뛰노는 거지."
지난 26일 임실군 관촌면의 한 축산농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전주시 덕진지역자활센터에서 공수한 커피박(찌꺼기) 1t이 도착하자 축사엔 소똥냄새 대신 은은한 커피 향이 풍겨온다. 도심 커피전문점에서 맡을 수 있는 향긋한 모카번 냄새는 아니었지만, 축사 특유의 악취는 분명 아니었다.
이곳 '파랑새' 축산농가에서는 지난해부터 전북지역문제해결플랫폼(집행위원장 한동숭, 이하 전북지플) '커피박 재활용 축산농가 냄새저감'의제가 운영되고 있다. 해당 의제는 매년 버려지는 커피박으로 톱밥을 대체해 축사의 악취를 줄이는 프로젝트다.
이날 축사에 도착한 커피박은 전주 덕진지역자활센터가 지역 65개 커피전문점에서 수거해 마련했다.
지난해부터 파랑새축산농장의 50여 마리 소는 커피 위에서 먹고, 자고, 볼 일을 보고 있다. 이날도 작업이 끝나자, 중장비 소리에 겁먹고 구석에 움츠려 있던 소들이 관심을 보이며 커피박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축사에 깔린 커피박은 속에 담겨 있는 미생물이 수분을 증발시켜 습도를 알맞게 유지해준다고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분뇨로 인해 질퍽해지는 기존 톱밥보다 조금더 쾌적한 환경을 소들에게 제공하는 셈이다.
커피박의 효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수분조절제로서 역할을 다한 커피박은 농장 한쪽에서 숙성과정을 거친다. 거창한 작업없이 가만히 놔두기만 해도 한 달 정도 지나면 뜨거운 열감이 느껴질 정도로 저절로 발효가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커피박 비료는 땅에 흡수가 잘 돼 작물 수확에도 큰 도움을 주는 등 사용하기에 따라 금쪽 같은 자원이 된다.
파랑새 축산농 김영부 씨는 "매년 무더위에 대비하는게 골머리였는데, 커피박이 악취 절감뿐만 아니라 습도 조절 효과도 있어 한시름 덜었다"며 "특히 커피박은 톱밥보다 저렴해 축사 운영비도 절감할 수 있어 만족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참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27일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에서 발생한 커피박은 35만t에 이른다. 이들 커피박은 대부분 소각 혹은 매립되기에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 커피박 1만t당 처리 비용은 약 10억 원이며, 매년 약 350억 가량의 처리 비용이 발생된다. 소각할 때 나오는 탄소와 온실가스 등 환경 측면에서도 부담이 크다. 커피박의 활용에 민간을 비롯한 지자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실제로 이번 의제의 실행 주체인 덕진지역자활센터는 지난해 축사의 냄새 저감에만 집중했던 단계에서 더 나아가 커피박을 활용해 비료나 열쇠고리, 화분을 만드는 등 재자원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번 의제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따른다. 매년 5000만 원 규모의 예산을 받아 운영하는 경북도에 비해 아직 전북도의 이렇다 할 추가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박준홍 덕진지역자활센터장은 "갈수록 인건비나 차량비가 늘어 의제 실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지자체의 지원이 전무한 상황"이라며 "예산 확보를 위해 꾸준히 지방 의회를 설득하고 있다. 앞으로 커피박의 재자원화에 지자체 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의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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