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 춘향골은 예로부터 예향(藝鄕) 또는 ‘충절의 고장’으로 일컬어져왔다. 남원 고을은 전통 판소리 가운데 <춘향가>와 <흥보가> 및 <변강쇠타령> 등 세 마디의 발상지이고, 판소리 동편제의 가왕(歌王) 송흥록 대명창의 탯자리가 운봉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5월 달에도 해마다 열리는 그 풍성한 <남원춘향제>는 94회째를 맞이하며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민속예술 축제를 자랑할 것이다. 그리고 ‘충절’(忠節)은 나라와 백성에 대한 충성과 절개를 뜻한다. 16세기 왜적 일본의 무도한 침략과 임진국난을 당하여 1597년 정유년 싸움에서 민관군 1만여 명이 옥쇄한 비극의 남원성 함락을 기리는 ‘만인의총’이 시내 향교동에 있으며, 19세기 동학농민혁명 때는 김개남 장군이 남원에 대도소를 설치하고, 무주 진안 장수 순천 낙안 고흥 등 전라좌도를 호령하였던 곳이다.
남원은 또한 문학예술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조선왕조 초기에 매월당 김시습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 속에 등장하는 <만복사저포기>는 남원 왕정동이 그 소재이다. 이승과 저승의 생사를 초월하는 젊은 남녀간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그 줄거리. 조선 중기의 삼의당 김씨(三宜堂金氏)도 남원 태생으로 유명한 허난설헌과 쌍벽을 이루는 여류시인. 그녀는 소박한 살림살이의 여염집 아낙네로서 평범한 일상적 삶과 전원생활의 풍치를 아름답게 묘사한 한시(漢詩)와 산문을 260여 편이나 남기고 있다. 이와 같이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남원 고을은 수많은 문화재와 유적지와 기념관을 가지고 있다.
최명희의 장편소설을 기리는 사매면 노봉마을의 <혼불문학관>과 요천강가 함파우길의 <김병종미술관>, 향단로의 <남원고전소설문학관> 및 판소리 <춘향가> 국가무형문화재의 명창 <안숙선기념관> 등등. 그런데 『문학관』은 없다. 음악 미술 건축 등 모든 문화예술 중에서 가장 중추이자 앞자리에 서있는 것이 바로 ‘문학관’ 아닌가. 문학이란 시와 소설 희곡 수필 아동문학 전부를 아우르는 문화예술 장르이다. 여기에 한 가지 사실을 덧붙이자면, 현재 한국문인협회의 남원지부 회원숫자는 40여 명, 고향 남원을 떠나서 서울 등 외지에서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재경남원문인협회』(손해일 회장)도 70여 명에 이른다. 그러고 보면 춘향골 남원 태생의 문학인은 1백여 명을 훨씬 뛰어넘는 숫자이다. 아마도 서울 부산 등 대도시를 제외하면 전국의 시군읍 중에서도 가장 많은 문학인을 배출하고 있는 곳이 전라북도의 남원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언필칭 ‘예향남원‘이라고 큰소리치는 고을에서 지금껏 순수 문학관 시설 하나를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은 스스로 미안하고 안타깝고 부끄럽다는 생각이다. 바야흐로 재경남원문인협회가 『남원현대문학관』 창설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니 뜻있는 인사들의 적극적인 성원과 수많은 협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늦는 것이 빠른 것이다. 18세기의 대실학자 연암 박지원님의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과 정신으로 기쁘고 행복한 그날이 하루 빨리 성취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노경식 극작가
△노경식 극작가는 남원에서 태어나 경희대를 졸업했고 대학로연극인광장 초대회장과 한국연극협회∙한국문인협회∙한국작가회의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대한민국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수많은 희곡작품과 희곡집∙산문집∙역사소설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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