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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50주년 특집 - 만경강] 호남평야의 젖줄 비옥한 충적지

만경강(萬頃江)의 ‘경(頃)’자는 그 훈(訓·한자의 뜻)이‘백이랑’이다.

 

따라서 강의 이름을 풀어보면 백이랑이 만개이니 ‘백만이랑’이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는 곧 이랑이 엄청나게 많은 넓은 들을 의미한다.

 

또 이고장 사람들은 이 평야를 ‘징게 맹경 외야미들’이라고 불러왔다.

 

이를 표준어로 나타내면‘김제 만경 외배미들’이다. 외배미들은 층계많은 산골 논과는 달리 논배미가 높고 낮은데가 없이 마치 한논배미와 같이 보인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말로 호남평야의 노른자위인 금만평야를 이른다.

 

전북지역 북서부 일대를 흘러 김제와 군산의 경계에서 서해로 흘러드는 만경강은 호남평야를 관개(灌漑)하는 대동맥으로 곡창 전북의 주역을 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강은 노령산맥의 서사면(西斜面)에서 발원한 여러 지류를 모아 상류에 4개의 거대한 저수지를 조성한후 전북 평야지대의 중앙부를 서서히 서류(西流),넓은 나팔모양의 하구를 만들고 하천으로서의 역할을 마치고 있다.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조선지지자료’에는 ‘만경강은 완주군에서 발원, 전주·익산·김제·옥구등지를 지나 김제 진봉면에서 바다로 들어가는데 그 길이는 98.5㎞다’라고 기록돼 있으며 그이후 발간된 많은 서적들이 이 자료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1938년에 만경강 하류지역의 구불구불한 곡강(曲江)을 바르게 펴는 직강(直江)공사를 준공, 길이 76㎞에 이르는 제방을 축조하여 강의 실제길이를 줄여 놓았다.

 

전라북도의 지형은 노령산맥을 경계로 서해안에서 노령산맥의 산록(山麓) 말단부까지의 서부평야지대와 그 동쪽의 산악지대로 크게 구분된다.

 

서부평야지대는 동진강 이북의 침식야산과 충적평야지대로 그 중심은 만경강수계를 젖줄로 하는 호남평야다.

 

충적평야(沖積平野)는 하천이 운반한 토사가 퇴적되어 형성된 퇴적평야의 한종류. 지표면은 평탄하고 산기슭의 곡구(谷口)에서 하구에 이르기까지 선상지와 자연제방·삼각주 등이 전개된다.

 

전북지역의 생활과 영농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경강수계는 고산천과 소양천,전주천,삼천,익산천,탑천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집수지역은 동으로는 노령산맥, 서북쪽은 함라산(咸羅山)이고 남쪽으로는 김제지역 해발고도 50m이하의 야산지대다.

 

만경강 유역은 해발고도 30m이하의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고 평야지대를 제외한 지형은 구릉성산지다. 이 지역의 기반암은 편무상화강암으로 오랫동안 심층풍화되어 적황색토(赤黃色土)가 덮혀 있다.

 

전북 북서부지역 일대를 황산벌 또는 황산현으로 부르는 것도 이 지역에 넓게 분포된 황적색토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강의 하구연안에는 하천을 통해 바다로 운반됐던 물질이 조수와 연안류에 의해서 해안으로 재운반, 퇴적되어 넓은 간석지(干潟地)가 조성돼 있다.

 

만경강 유역 평야지대를 세분해보면 3개의 지형단위로 구분할 수 있다.

 

이 하천이 동부산지로부터 서부 화강암지대 구릉지(丘陵地)로 나오는 곳에 완주군 봉동읍이 위치해있고 충적평야는 이 하류부에 더 넓게 형성되어 있다.

 

봉동에서 삼례까지는 선상지(扇狀地)성 충적평야,삼례에서 만경부근까지는 배후습지(背後濕地)와 자연제방으로 된 범람원평야이고 만경읍 하류부는 연해(沿海)평야다.

 

삼례하류부의 범람원지역을 흐르는 현재의 하천유로는 제방에 의해서 직선화되어 있지만 평야지대에는 옛 물길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이 지역에 분포된 토양은 사양질(砂壤質)내지 사질(砂質)의 충적토로 지형이나 배수상태에 따라 논 또는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만경강의 특징은 감조(感潮)하천 구간이 길고 자유곡류하천이라는 점이다.

 

감조하천(Tidal River)이란 하류부에서 밀물과 썰물등 조수현상의 영향을 받아 수위와 유속이 변동하는 범위를 가진 하천으로 밀물때에는 하구에서 상류쪽으로 조수가 거슬러 올라오게 된다.

 

만경강의 경우에는 현재 삼례교 주변의 하상표고가 4m여서 그 이하지역은 감조하천구간에 해당된다.

 

예전에는 배로 하구에서 익산시 춘포면 대장촌(大場村)까지 들어갔으며 그사이에 신환포(新煥浦·김제)와 목천포(木川浦·익산)등의 선착장이 있어 출곡기(出穀期) 농산물 운송에 많이 이용되어 왔다.

 

이에따라 만경강 하구에 있는 만경대교에서 삼례교간 25㎞와 그 사이에 있는 지류연안의 저지대는 인공제방이나 방조(防潮)수문을 설치하지 않는 한 만조시에 바닷물이 침수해 들어오게 된다.

 

이 때문에 자연상태에서는 이 하천수를 농업용수로 사용할 수 없었고 집중호우가 겹치면 하류부에서의 유황이 불안정, 침수기간이 길어지면서 홍수피해가 극심했다.

 

유황이 불안정한 또 하나의 원인은 하천의 유역면적이 좁다는데 있다. 세계적인 대하천들이 집중호우에도 유황이 안정적인 것은 유역면적이 넓기때문.

 

또 만경강은 동진강과 함께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자유곡류하천(Free meander)이다.

 

이는 완경사의 충적지를 흘러가는 하천이 침식곡을 만들지 않고 자유사행(自由蛇行)을 거듭, 하도(河道)의 좌우이동이 심한 하천.

 

옛 지형도에서 보면 이 강의 하역은 대부분 곡류대에 속해있고 구하도의 흔적인 하적호(河跡湖·곡류하던 강의 일부가 본디의 물줄기에서 떨어져 생긴 호수)가 갖가지 모양으로 평야지대에 수없이 산재해 있다.

 

호안공사와 경지정리 후에도 이러한 구하도의 유물은 인간생활에 큰 영향을 끼쳐 춘포면일대등 익산 남부지역 대부분의 취락은 곡류부의 자연제방위에 위치해 있다.

 

이처럼 만경강은 완경사의 충적지이기 때문에 비옥한 평야지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감조구간이 길어 농업용수가 부족하고 홍수의 피해가 큰 하천이었다.

 

즉 이 강의 본류인 삼례하류부는 비옥한 충적평야임에도 불구,저온지(低溫地)가 넓고 하천수에 염분이 함유돼 농업용수로 쓰기에는 적당하지 않았으며 홍수피해도 거듭돼 왔다.

 

따라서 제방축조·방조수문 설치등 대규모 치수사업이 시작되기 전인 1920년대까지는 삼례지역 상류인 고산천과 소양천·전주천·삼천주변의 평야지대가 논농사에 더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같은 이유로 이 하천 유역에서는 벼농사 실시이후 치수와 수리사업이 계속돼 왔다. 만경강에 대한 주요 치수사업은 하구 간척사업과 동상저수지·대아저수지 축조,제방공사및 간선수로 개설,직강공사,제수문(制水門)설치등으로 1920년대이후 본격화됐다.

 

특히 1930년대에는 하안에 인공제방을 쌓고 곡류가 심한 부분에 직강공사를 하여 곡류하천의 하도가 직선상 하도로 변했다.

 

만경강을 경계로 하고있는 익산시와 김제시는 하천의 직강화로 인해 지난 1973년 행정구역에도 변화가 생겼다.

 

즉 만경강의 우안(右岸)으로 당시 익산 오산면(五山面)에 속해있던 신지리(新池里)와 남전리(南田里)의 일부가 김제 공덕면(孔德面)에,목천리(木川里·현재 목천동)의 일부가 김제 백구면(白鷗面)에 편입됐다.

 

또 하천의 좌안(左岸)으로 김제 백구면에 속했던 삼정리(三亭里)의 일부가 익산시에,백구면 반월리(半月里)·강흥리(江興里)의 일부지역이 익산 춘포면에 속하게됐다.

 

이와 함께 만경강은 하류에 토사를 퇴적해서 삼각주를 형성한 하천과는 달리 침강해안에 유입하는 하천이라는 점에서도 특색을 가지고 있다.

 

만경강유역은 70여년에 걸친 하천개수와 개발로 황량한 갈대밭에서 옥토로 변화,호남평야의 젖줄로서 이지역의 생활과 문화·경제활동및 농경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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