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목가시인 신석정(1907년-1974년). ‘한국근대시사에서 단하나의 뿌리의 시인’으로까지 평가받았던 석정이 세상을 떠난지 24년. 그가 고향땅에 안겼다. 1974년 7월 6일에 작고, 생전에 휴양지로 삼았던 임실군 관촌면의 신월리에 안장됐던 석정의 유해가 29일 부안군 행안면 영리의 선영 가족묘지로 옮겨졌다. 오랫동안 타지에서 몸을 뉘였던 석정은 이제 먼저 가있던 아내와 아들과 한 울타리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석정의 고향 부안 사람들과 문학인들은 변산반도 입구 해창공원에 석정 시비를 세우고 부안읍 선은리의 고택 ‘청구원’을 정비해 옛집의 모습을 다시 찾는 등 그의 문학세계를 기리는 사업을 활발히 벌여왔지만 다른 지역에 안장된 그의 묘지를 고향에 들여놓지 못해 안타까와했었다. 이번 묘지 이장은 문중에서 추진한 것.
석정이 고향땅에 돌아온 이제, 부안은 석정문학의 향취를 북돋는 사업이 보다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청구원을 중심으로 문학관 건립이 추진되고 석정의 문학과 생애를 조명하는 사업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될 전망.
이번 옮겨진 그의 묘지에는 시비도 세워진다. 석정의 문학향취를 만나기 위해 부안을 찾는 문학도들은 이제 넉넉한 평야와 바닷바람을 아우르는 정취있는 부안의 공간안에서 석정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만날 수 있게 된 셈이다.
1907년 부안읍에서 태어난 석정은 1924년 조선일보에 ‘기우는 해’를 발표하면서 데뷔했으며 39년에 처녀시집 「촛불」을 발간했다. 두번째 시집 「슬픈 목가」로 자신의 독창적인 문학세계를 더욱 돋보였던 석정은 전주고와 전북대 등에서 강의하면서 많은 문인을 배출했으며 전북문학판을 주도했다. 유난히 화초와 나무를 좋아했던 그는 자연뿐 아니라 치열한 역사의식과 짙은 현실참여를 시로 형상화했던 민족시인. 그를 추모하는 많은 문학 후배들과 제자들은 전주 덕진공원과 부안군 변산면 해창공원에 그의 시비를 세웠다.
이날 묘지 이장에는 가족들과 석정문학회 회원들, 문인들이 참석해 고향에 돌아온 석정을 반기고 참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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