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 사람이 되어 오수를 떠나겠습니다.”
부임할 때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한 약속이다. 3년이 지난 오늘 ‘나는 한 인간으로서, 사제로서 얼마나 오수 사람이 되어 살았나?’반성하고 고백한다.
작은 교회, 따뜻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사의 정을 느낀다. 헨리 나우엔 신부의 고백을 거울 삼은 약속과 다짐을 기억한다.
“생각으로만 가득 찬 사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반대로 안이 비어야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자리가 있게 된다. 사제는 많이 울어야 한다. 그래야 울고 싶은 사람들이 사제에게 올 수 있다. 사제는 더 많은 기쁨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사제와 함께 기뻐할 수 있다. 사제는 자기 삶 안에 빈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 자리에 들어와서 편히 쉴 수 있다.”
삶의 힘과 방향이 되는 어머니, 뇌경색에 의한 중풍으로 마비 상태에 계신다. 밥도 혼자서 드실 수 없고 대소변도 혼자서 하실 수 없는 일상을 사신다. 어머니의 눈물을 자주 본다. 어머니의 눈물에서 그분의 삶을 뼈저리게 느낀다.
77세. 55년 세월을 오직 땅을 파고 땅과 함께 살아오신 어머니, 평생 땅을 떠나신 적이 없다. 그런 모습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충직한 신앙을 고백하신 어머니.
‘어머니, 우리의 희망!’
‘사람만이 희망이다.’ 이곳에서 삶의 정신과 방향 삼아 산다고 살았는데, 과연 그랬는가? ‘나는 이웃에게, 신자들에게 얼마나 희망이 되었나?’ 희망은 말이 아니라 철저한 체험이며 실천이 아닌가.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서 죽기까지 십자가에 죽기까지 고통을 당하신 그리스도, 삶 속에서 십자가의 수락이 부활이며 생명임을 확인해 주시는 분.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희망!’
중풍으로 누워 계시는 할아버지를 간호하는 할머니, 중풍과 치매 상태 할머니를 극진히 아끼는 할아버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시어머니를 정성껏 모시는 며느리, 어머니의 손과 발이 되어 주는 자식들과 며느리들에게서 희망을 느낀다. 5백m 거리를 1시간동안 걸어서 성당에 오시는 꼬부랑 할머니가 빵 한개와 조기 몇 마리를 가지고 오셨다. 희망은 깊은 사랑에서 온다. 국회의원들과 의사들이 국민들에게 고통과 실망감을 주는 오늘, 성당, 예배당, 법당, 교당은 희망의 장소인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요한 15장 12절)
/김봉술신부(오수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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