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이남기)가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경제검찰로 불릴만큼 시장질서 확립에 힘써온 공정위는 지난 20년동안 우리 경제 구석구석에 공정한 경쟁원리를 확산, 나름대로 경제민주주의를 실현해왔다는 평가와 함께 지난 97년 경제위기 이후 기업구조개혁을 뒷받침 하면서 우리 경제의 체질개선과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김제 출신이기도 한 이남기(李南基. 58) 위원장을 과천 정부청사에서 만나 공정위의 발자취와 나아갈 길 등을 들어봤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지난 20년동안 주요 성과를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공정거래제도 도입의 의미는 단순히 경제활동을 규율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가 돌아가는 작동양식과 방향이 전환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용어조차 낯설었던 ‘경쟁’이라는 개념이 기업과 국민 모두에게 익숙해지고 경제 전반에 확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정부의 보호. 지원. 규제정책에 의해 움직이던 경제가 시장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방향으로 기본 메카니즘이 변한 것이지요.
공정위가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시장경제체제의 확립과 경제민주주의 실천에 앞장서왔다고 자부합니다. 특히 지난 97년 경제위기 이후 기업구조 개혁을 강력히 뒷받침 하면서 순환출자, 상호채무보증, 부당내부거래 등 재벌들의 선단식 경영행태를 개선, 기업경쟁력 강화의 시스템을 마련한 것은 큰 성과라 생각합니다. 이밖에 소비자와 중소기업 보호에 많은 정책을 내놓은 것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97년말 경제위기 이후 재벌개혁에 남다른 노력을 해왔는데요, 지난 3년간 재벌개혁의 성과는 무엇이고 향후 정책방향은 무엇입니까.
―부실재벌의 대거 퇴출을 통해 대마불사(大馬不死)의 폐해를 근절했다는 것을 가장 큰 성과로 들 수 있습니다.소액주주권 강화, 사외이사제 도입, 회계기준 강화, 적대적 M&A 허용 등으로 기업경영에 대한 내외부 감시장치를 마련했고, 대기업집단의 부채비율을 크게 낮춰 재무구조를 개선했습니다.
특히 상호채무보증을 완전 해소하고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재도입을 통해 선단식 경영의 연결고리를 차단, 연쇄도산의 위험을 막는 독립경영체제를 확산시킨 점은 큰 성과입니다. 다만 그룹총수가 소유지분에 비해 과도한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고 부당내부거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지능화되고 있어 이에대한 개선과 보완시스템의 작동을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공정위가 앞으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활동할 계획이신지.
―올해는 공정위가 성년이 되는 의미깊은 해로서 진정한 시장경제를 정착시켜 선진경제로 발돋움할 때입니다. 따라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도록 경쟁적 시장환경을 조성하고, 시장의 힘에 의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간 마련된 제도를 보완하고 감시할 계획입니다.
또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이 경쟁의 압력으로 작동되도록 소비자 권익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중소기업의 경쟁기반을 확보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국민생활과 밀접하거나 시장집중도가 높은 6개 산업을 대상으로 ‘Clean Market Project’(시장개선대책)을 추진, 시장구조를 근원적으로 개선할 생각입니다.
▲포괄적 시장개선대책을 실시한다고 했는데요, 어떻게 진행되며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까.
―국민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정보통신, 의료. 제약, 건설 등 6개분야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약 2개월간 1차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많은 성과가 있었다고 봅니다.예를 들어 교복 제조업체의 학생복 가격 카르텔 혐의를 적발하고, 예식장의 사진. 드레스 끼워팔기, 중도해지시 예약금 미반환 행위, 제약회사의 의약품 도매상에 대한 재판매가격 유지행위 등 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시장구조. 정부규제. 기업행태에 대해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조치가 이뤄지면 사업자들간 경쟁을 통해 보다 값싸고 질좋은 상품과 서비스가 소비자들에게 제공되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기업집단의 부당내부거래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에대한 대책이 있다면.
―공정위는 98년 이후 지속적인 조사로 총 29조4천억원의 부당내부거래를 적발, 2천9백9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습니다. 공정위의 조사가 강화되자 부당내부거래 수법이 더욱 지능화되는 사례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금융거래정보요구권을 활용, 특수관계인 지원이나 해외법인및 역외펀드를 이용한 부당지원 등을 중점 감시할 계획입니다.
▲카르텔은 그 폐해가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근절되지 않고 있는데요, 이에대한 공정위의 대처방안은 무엇입니까.
―카르텔은 흔히 시장경제의 ‘암’(cancer)이라고 불립니다. 이는 그 피해가 심각하다는 의미 외에, 발견 자체가 매우 힘들고 발견하더라도 완치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강력한 대처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주요 발주기관과의 정보공유체제를 구축, 카르텔 신고자에 대한 포상제도 등을 통해 사회적 감시체제를 유지할 계획입니다.
신고자외에 조사협조자도 면책대상에 포함, 효율적 조사를 추진하면서 카르텔 가담기업에 대해 카르텔로 얻는 이익보다 시정조치로 인한 손해가 훨씬 크다는 사실을 주지시켜 담합의 유인을 제거해 나가겠습니다.작년 정유4사의 군납유류 입찰담합에 대해 1천2백1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카르텔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은 좋은 예입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열악한 지위에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은 없는지요.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의 보호와 육성은 우리 경제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밑거름입니다.중소하도급 업체가 거래중단이나 보복을 우려하여 신고를 기피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99년부터 직권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대규모 직권실태조사와 신고사건 처리를 통해 중소하도급 업체들이 체불대금 6백37억원을 지급받도록 조치한 바 있습니다. 금년에도 이런 조사 대상업체를 대폭 늘리고, 공공공사 등 일정한 하도급거래에서 발주자가 원사업자를 거치지 않고 하도급업체에게 하도급대금을 직접 지불하는 제도를 확대 보완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 중소하청업체들이 계약, 납품, 결제 등에 있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권익향상을 위한 대책은 무엇이 있습니까.
―지금까지의 소비자정책은 사후 피해구제에 초점이 맞춰짐에 따라 소비자 피해의 사전 예방시스템은 다소 불충분했던 게 사실입니다. 금년부터는 클린마켓 프로젝트를 추진함으로써 소비자 피해 등을 야기하는 시장구조와 관행 등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계획입니다.
소비자보호를 위해 중요정보 공개제의 대상업종을 10개에서 20개로 확대하고, 사실에 근거한 비교광고를 활성화 하겠습니다.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제시한 약관으로 거래함으로써 발생되는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2천5년까지 1백여개 분야의 표준약관을 보급할 계획이며, 금년에는 예식장. 택배. 포장이사 등 최소한 10개 분야를 대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최근 전북도청에서 경제설명회를 가지셨는데, 전북경제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전북의 미래는 ‘첨단과 전통의 조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군산 자유무역지역과 전주 과학산업단지를 연계하여 하이테크 신산업벨트로 조성하면 환행해권 시대의 생산. 교역기지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산업화는 뒤졌지만 첨단산업을 적극 육성하면 지식기반경제시대에서 앞서갈 수 있다고 봅니다. 전북은 또 예향으로서 유구한 문화와 전통, 그리고 수려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어 이를 잘 활용한 문화관광산업에 깊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2천2년 월드컵, 2천10년 동계올림픽 등 무형의 관광자원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전북출신 공직자 모임인 삼수회 회장을 맡고 계신데, 이 모임의 활성화 방안이 있다면.
―고향 선후배간 친목을 도모하고, 고향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힘을 합치자는 데 기본 정신을 두고 있습니다. 삼수회 정회원이 서기관급 이상으로 되어 있어 사무관급의 참가 희망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를 위한 방안도 연구하면서 고향의 불우시설 등에 보이지 않는 지원사업 등을 적극 펼칠 계획입니다.
◇.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은 누구
공정거래 분야의 실무적. 학문적 권위자로 옛 경제획원에서 뼈가 굵은 전형적인 경제관료. 공무원 시작후 과장, 국장시절을 대부분 공정거래업무에 종사해 위원회 내부는 물론 경쟁법 분야의 기둥으로 꼽힌다. 경제법 등 7종의 경쟁법 분야 책을 펴 냈고, 공무원으로서 공정거래법 박사학위 제1호로 공정거래법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이론통이다.
국민의 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재벌개혁의 중심에 서 강력한 의지와 소신으로 각종 규제 및 담합을 폐지하는데 앞장서왔다는 평을 듣는다. 경제기획원 시절 주제네바대표부 경제협력관, UR협상 한국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탁월한 영어실력과 협상능력을 발휘, 경쟁정책 분야 국제협력에 있어 대단한 실력가로 인정받고 있다.
보름에 한번씩은 어김없이 고향 김제에 계신 노모를 문안하러 가는 효자로 소문나 있다. 틈틈이 등산을 즐기고, 가족은 부인 이정희 여사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으며, 장남은 98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현재 군법무관으로 복무중이다.
김제고, 고려대 법학과를 나와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73년), 동국대 대학원 법학박사(86년 공정거래법 전공) 등을 취득했으며 69년 제7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했다. 83년 타이왕국 최고훈장(백상훈장), 86년 녹조근정훈장, 97년 황조근정훈장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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