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때 건설업에 뛰어들어 39세 되던 해인 1975년 (주)흥건사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전북건설업계 혜성으로 부상한 뒤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였던 80년대 서울 개포지구 개발 등 전국단위 건설공사를 휩쓸며 전북은 물론 전국적으로 도급순위 상위를 차지하며 전북건설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또한 1994년 4월부터 2000년 4월까지 전주상공회의소 15·16대 회장을 역임하며 전북경제의 수장으로서 지역산업단지 입주업체 유치를 위한 기반시설 확충에 힘써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등의 도내 유치에 기여했으며 2002년 월드컵 전주 유치위원장을 맡아 무산이 유력시 됐던 월드컵 경기 전주 유치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전주문화원장 재임시에는 사비를 들여 향토문화지인 격월간지 '노령'을 발행하며 전북의 문화를 널리 알리는데 기여했고 법무부 갱생보호회 전주지부 보호위원회협의회장 재임시에는 교도소 출소자에 대한 재정 지원 및 취업에 힘써 자활의 희망을 안겨줬다.
또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 사재를 털어 전주지역한마음장학재단을 설립, 현재까지 이사장직을 수행하며 10억원 기금조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열심히 노력하면 안되는 것이 없다'는 인생철학을 가진 김 회장은 경제계에 입문한 뒤 현재까지 경제인으로, 사회봉사자라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