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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국민 행복 위한 최고법…헌재가 매개 역할해야" 21일 퇴임 이강국 헌법재판소장

대담 = 조상진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 국민이 위임한 재판권·검찰권 국민 위해 행사해야

▲ 이강국 前 헌법재판소장은 "헌법은 국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국가의 최고법" 이라며 "헌법과 현실이 따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 헌법재판소가 매개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안봉주기자 bjahn@

6년 동안 우리나라 헌법 수호의 수장(首長)을 맡았던 이강국 헌법재판소장(68)은 21일 퇴임을 앞두고 눈코들새 없이 바쁜 모습이었다.

 

지난 연말 1000쪽에 이르는 기념논문집을 발간하고, 연초에는 태국 헌법재판소와 MOU를 체결하는 등 아시아 4개국 헌법재판기관을 방문했다.

 

귀국하자마자 새 정부가 국민대통합과 안정성, 행정능력을 높이 산 탓인지 첫 국무총리로 하마평이 무성하다. 인터뷰 시작 전, 총리 얘기를 꺼내자 "더 이상 공직을 맡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것을 정확히 써 주세요."라면서 웃는 모습이 편안해 보였다.

 

이 소장은 퇴임후 전북대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2007년 국회 인사청문회 때 약속했던 대로 법률구조공단에서 무료법률봉사활동을 하기로 했다. 서울의 유명대학이나 대형 로펌의 유혹을 뿌리치고, 고향과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인터뷰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장실에서 가졌다.

 

-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소장님께서는 40여 년의 현역 법조계 생활을 마감하시는데 소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퇴임 소감부터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6년 동안 헌법재판소장으로 공직을 수행한 게 과분하고 행복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를 세계적인 헌법재판소로 도약시켜 보겠다는 뜻을 갖고 있어서 행복했고, 또 그런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서 행복했고, 그런 꿈의 일부를 현실적으로 이루게 돼서 참으로 행복했어요. 나아가 대과없이 영광스럽게 퇴임을 하게 돼서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재임 중 보람된 일도 있었을 것이고, 또 아쉬운 일도 있었을 텐데요?

 

"보람된 일이라면 우선 헌법재판연구원을 3년 동안의 노력 끝에 신설한 점입니다. 그래서 헌법재판소의 중·장기 정책과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작년 5월에 아시아헌법재판소 연합체를 출범시켰어요.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기여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점이 자랑스럽고요. 그 다음에 2014년에는 전 세계 120여 개국의 헌법재판 관련 기관의 수장들이 모여서 헌법을 논의하는 세계헌법재판회의를 서울로 유치했어요. 우리의 국제적 위상이 한층 더 높아질 겁니다. 아쉬운 점은 국민들로부터 더욱 큰 사랑과 신뢰, 존경을 받아야 하는데 그런 점이 아직은 미진한 것 같아요."

 

- 재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소송은 무엇입니까?

 

"순전히 법리적인 것이기 때문에 일반 독자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부분이겠지만, 작년 연말에 우리가 했던 한정위헌청구의 적법성에 관한 사건이 있어요. 20여 년 동안 계속되어 왔던 판례를 번복한 건데 법리적으로 의미가 있죠. 그리고 저희가 내세울 수 있는 게 미디어법, 미네르바 사건, 야간옥외집회 금지사건 등이 있죠."

 

- 헌법이란 무엇이며, 소장님께서 임기동안 세우고자 했던 헌법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저는 헌법이 국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국가의 최고법이라고 생각해요. 헌법에는 온갖 좋은 소리가 다 있잖아요. 민주주의, 법치주의, 법 앞의 평등,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인간답게 살 권리, 이런 온갖 좋은 소리가 다 있는데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했잖아요. 헌법 따로, 현실 따로, 이렇게 된 이유가 헌법재판에 의한 매개역할이 충분치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창립되고 헌법재판소에 의한 중개·매개 역할이 강화되면서 국민들은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주목하고 존중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됨으로써 헌법은 단순히 장식적. 명목적 규범이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을 지배하는 생활규범, 국가권력의 남용에 대한 강력한 통제규범이 되고 그런 것을 통해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이념적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사회적 통합규범으로 발전된 거죠. 헌법과 헌법재판소와의 관계가 그런 점에서 중요한 거죠."

 

- 소장님은 지난 해 10월 마지막 국정감사를 마치며 "헌재가 세계적 기관으로 도약하기 위해 세계적 수준의 높은 법리로 무장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실정에 맞는 제3의 법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는데요?

 

"우리 헌법재판소는 1988년 출범할 당시 독일연방헌법재판소를 모델로 창립됐어요. 그런데 그 후에 연구관들이나 재판관들이 미국 유학을 다녀오면서 이제는 미국 대법원의 영향도 많이 받게 됐죠. 미국식의 헌법재판의 법리와 독일식의 헌법재판의 법리가 꼭 같은 건 아녜요. 그래서 저는 이제 미국식이나 독일식 좌고우면하면서 고생할 게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가치체계, 문화체계에 맞는 우리 나름대로의 길을 찾자, 특히 아시아적 가치와 규범에 맞는 아시아적인 기준을 찾아내야 한다, 이것이 제가 주장하는 제3의 법리인 거죠."

 

- 퇴임 후 계획은?

 

"더는 어떤 공직도 맡지 않고, 인생 2모작으로 사회봉사와 새 세대를 위한 교육을 할 생각에요. 전북대학교 로스쿨 석좌교수로 가서 학생을 가르치기로 했어요. 전북이 조용한 곳이기 때문에 외부적인 자극도 받아야 하고, 특히 젊은 사람들은 세상이 넓고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아야 하잖아요. 그런 부분에 제가 기여할 수 있는 일정한 몫이 있지 않을까 해요. 그리고 법률구조공단에서 자원봉사단으로 무료상담활동을 하기로 했어요. 이미 공단 승낙까지 받았어요. 사회적 약자와 소외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법률서비스를 하는 거죠. 다만 통일이 온다면 통일헌법 제정에 참여하고 싶은 게 마지막 소망이자 희망입니다."

 

- 이번 대선은 물론 오래 전부터 권력구조 등 개헌 논의가 꾸준히 있어왔습니다. 개헌의 방향에 대해 소장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지금 개헌에 대한 논의가 너무나 권력구조에 집중돼 있잖아요. 권력구조에서 촉발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 부분에만 너무 집중되어선 안 되고 국민의 기본권이나 국제화, 세계화에 관한 문제들을공론화해서 전문가와 일반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용하고, 문장도 아름답게 해서 생명력이 긴 그런 헌법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해요. 다만 앞으로 통일에 대비한 헌법적인 근거도 만들어 놓았으면 좋겠어요. 서독은 이미 통일에 대비한 근거들을 헌법에 명문으로 다 규정을 했었어요.

 

- 판사의 막말이나, 뇌물검사, 성(性)검사 등 모범이 되어야 할 법조인들이 사회의 지탄을 받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법조인의 자세랄까, 몸가짐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시죠.

 

"법관들이 행사하고 있는 재판권, 검사들이 행사하고 있는 검찰권, 이게 모두 법원이나 검찰에서 스스로 창출해서 만든 권력이 아니에요. 이건 국민의 권력인데, 국민이 법원이나 검찰에 위임한 것이죠. 그러니까 법원이나 검찰이 재판권과 검찰권을 행사하면서 항상 이건 국민의 권력인데 우리가 위임받아 행사할 뿐이라는 것, 따라서 재판권이나 검찰권은 국민을 위해서 행사되어야 한다는 투철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 가끔 튀는 판결도 있는 것 같던데요?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고 할 때의 양심은 개인적인 양심을 의미하는 게 아녜요. 개인적인 양심에 관한 규정은 헌법에 다른 조항이 있어요. 법관의 양심이라는 것은 국가기관으로서의 법관으로서의 양심을 의미하는 것이고 국가나 정치권력으로 부터의 독립과 중립, 또 국민을 위한 헌신 그런 것들이죠. 또 구체적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정확한 재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확한 사실인정과 정확한 법률의 적용, 그리고 정확한 판단, 이래야 정확한 재판이 되는 건데 말처럼 쉬운 건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재판이 되기 위해서는 경험과 경륜도 많아야 하고, 근본적으로는 법관과 검사가 정확한 재판이나 수사를 하겠다는 열정이 필요하죠."

 

- 법조계에 입문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로켓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모형로켓을 만들다가 화약이 폭발하는 바람에 손을 다치는 일도 있었어요. 로켓 전문가가 되려면 그 당시 서울 공대 조선항공과를 가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 다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린 마음에도 조선항공과를 졸업하고 갈 길이 막막한 거예요. 또 아버님은 은근히 법조인으로 제가 나갔으면 하시고, 저도 효도도 하고 싶고, 그래서 고 2때 갑자기 문과로 돌았죠."

 

-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법조 역사가 짧은데, 꼭 우리나라에서 찾는다면 김병로 대법원장과 조진만 대법원장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김병로 대법원장께서는 사법권의 독립을 강조하셨고 조진만 대법원장께서는 탁월한 법리적 능력을 발휘하셨죠. 조 대법원장은 판결문을 개선하고 한글 전용화를 이룩하신 분인데, 1960년대 초에 한글 전용화 한다니까 변호사 분들이 다 반대했죠. 이 분이 밀어 부쳐서 개선하셨죠"

 

- 전북은 가인 김병로, 화강 최대교, 사도법관 김홍섭 등 법조 3성(聖)을 배출한 고장입니다. 소장님의 경우, 3대가 법조 가족으로 이러한 자랑스런 전통을 잇고 계십니다. 우선 선친이신 고(故) 이기찬 변호사님은 지역에서 엄격하신 법조인으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소장님이 쉰이 넘어서도 안경을 벗고 뵈었다고 제가 들었은데요?

 

"그럼요. 제가 명절 때 내려가서 뵙잖아요. 그러면 우선 안경을 벗어서 안주머니에 집어넣고 아버님 좌정하신 방문을 열고 마루에서 큰 절을 올리고 꿇어 앉아 있으면 선친이 '들어 오너라' 말씀을 하시면, 기다시피해서 방으로 들어가죠. 꿇어 앉아 있으면 '편히 앉거라' 하시면 비로소 편히 앉고 그렇게 지냈죠. 아주 엄격하시고 대쪽이셨죠."

 

- 선친께서 어떤 점을 당부하셨습니까?

 

"선친께서는 항상 언행을 신중하고 사려깊게 하도록 강조하셨어요. 특히 법관은 칼 날 위를 걸어가는 것과 같다. 균형을 잃거나 집중을 하지 않으면 그 칼에 자신의 발을 벨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항상 집중하고 신중하고 균형을 잡아야 하고, 조심해야 한다, 이걸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셨죠."

 

- 자녀들에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라. 노력하다 보면 수퍼맨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치신 걸로 아는데요?

 

"저희 집 애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한테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 얘기하죠. 그 외에도 아버님한테 배운대로 신중함, 사려 깊은 처신을 하라고 하죠."

 

- 법조계의 맥을 잇고자 하는 고향의 젊은이들에게 귀중한 말씀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작년 9월에 전주고에 가서 '꿈을 꾸는 자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주제로 특강을 했어요. 전북은 외부적인 자극이 없다 보니까 제대로 꿈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꿈과 이상을 가져야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도 생각하고 노력도 하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전북의 젊은이들이 꿈과 이상을 높고 크게 가졌으면 싶고, 그걸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을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바로 철이 난다는 의미겠죠. 제가 제 분야에서 그걸 돕도록 하겠습니다."

 

- 고향인 전주나 임실은 가끔 다녀오십니까?

 

"매년 부모님 기일(한식)과 추석 때, 2차례는 정례적으로 조용히 성묘를 다녀오죠. 21일 퇴임하면 23일 성묘 가서 '헌법재판소장 잘 마쳤습니다'고 고유(告由)를 드릴 예정입니다."

 

- 고향에서의 어렸을 적 추억, 가령 고등학교 때 에피소드라든지를 한 가지만 들려주시죠.

 

"전주고 1학년에 들어가니까 선배들이 클럽이라는 것을 만들어 가지고 후배들 하나씩 뽑아서 팀을 만들었어요. 주특기가 다른 사람들을 모아 팀을 구성하듯 해서 단합 대회한다고 1학년 초에 우전면 다리 밑으로 일요일에 모여라고 해요. 갔더니 큰 다라이에다 동네에서 막걸리를 받아와 가지고 세수 대야에다 막걸리를 가득 부어서 다 마시라는 거예요. 저는 그때 술이라는 것을 처음 마셔봤어요. 술이 어떤 것이라는 것도 모른 채 막걸리 한 대야를 다 마셨죠. 그리고 거기서 뻗었어요. 나중에 눈 떠보니까 병원이더라고요. 그래서 병원에서 링거주사 맞고 하루 반나절 고생을 했죠. 지금도 그때의 안 좋은 인연 때문에 그런지 술을 잘 못해요."

 

- 대법원 및 헌법재판소 근무가 집에 자료를 싸가지고 가서 검토할 정도로 엄청난 격무인줄 아는데 건강관리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렇죠. 그동안 등산도 하고 재판관들하고 주말에 골프도 해봤는데, 지내 보니까 역시 등산이 건강 증진 방법으로 가장 좋다 싶어요. 나이가 드니까 높고 험한 산은 아니더라도 둘레길이나 야트막한 산을 다니는 것이 건강 증진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 조상진 선임기자가 이강국 헌법재판소장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안봉주기자 bj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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