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스젠더' 하리수. 텔레비젼을 통해서 그녀를 볼 때마다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한다. 지금도 호주제는 미풍양속임을 주장하는 일부 어른들은 '어떻게 남자로 태어나 여자로 몸을 바꾸는 천인공로할 행동을 할 수 있느냐'며 한탄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서 호의적이다.
이런 호의를 우리 사회가 성 규범에 대해서 개방적이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전에 커밍아웃한 남자연예인에 대한 냉대와 동성애자 사이트 폐쇄 등이 보여주듯이, 우리 사회는 생물학적 성을 바탕으로 한 이성애적 성 규범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트렌스젠더 하리수에게 쏠리는 관심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대중매체에 의해서 상업적으로 상품화된 그녀에 대한 호기심이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다. 그녀가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아름다움을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쁘면 다 용서할 수 있다'는 말들이 흘러 다니는 요즘, 남성의 시선이 중요한 우리 사회에서 그녀가 시선을 즐겁게 해준다는 점이 대중적 인기를 끄는 비결인 것 같다.
과연 아름다운 몸을 지닐 수만 있다면, 사회의 성 규범은 물론 가치관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녀에게 성적 호감을 보이는 남자들 중 몇 명이나 그녀에게 결혼의 욕구를 가질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호감을 가지는 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성을 전환하고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추구하려는 그녀가 아니라,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그녀의 몸이다.
'결혼할 여성은 성격이 좋았으면 좋겠다'는 말이나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는 광고문구는 남성들이 무의식적으로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과 소유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나누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트렌스젠더인 그녀를 좋아할 수는 있어도 결혼은 곤란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또한 '어머니'라는 말에서 여성으로서의 성적 매력을 제거하며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녀에 대해 열광하면서도 제도권 안에서 그녀를 여성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여성의 몸을 관음적으로 즐기면서, 한편으로 결혼한 여성의 몸을 남편과 아이들이 공유할 때 아름다운 것으로 정의하는 여성에 대한 이중적 기준에서 비롯된다.
/ 이희경 (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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