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천이 바닥에 놓이고 그 위로 검은 선글래스에 머리를 박박 밀은 한 남자가 드러눕는다. 그 남자는 몸을 이러저리 뒹굴다 천을 조각내기 시작한다. 어느새 천은 사람이 서있기 조차 힘들만큼 작아진다.
행위예술: 개념미술의 관념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육체 그 자체를 통하여 실행하는 예술행위. 회화·조각 등이 전통적인 장르개념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표현욕구를 신체를 이용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표현하는 예술행위.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에 있는 카페 ‘내추럴맵’. 그곳에 가면 지역에서는 생소하기 그지없는 행위예술이 만날 수 있다.
지난 99년 문을 열고 이달말이면 2주년을 맞는 내추럴맵은 많게는 한달에 1∼2번, 적게는 석달에 2차례정도 행위예술이 펼쳐진다.
이곳을 운영하는 운영하는 심홍재씨(40)가 행위예술의 주인공. 인간이란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비닐봉지에 싼 내장덩어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행위를 통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때론 알몸으로 때로는 나뒹굴고 쓰러지며 말 대신 행위를 통해 언제나 새로운 것을 표현하기 위해 지난 80년대후반부터 퍼포먼스에 천착하고 있는 그는 지난 99년 전북예술회관에서 1백회 기념공연을 가지기도 했던 도내 퍼포먼스의 개척자.
국내에서는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을 계기로 최초의 해프닝이 시도됐을 만큼 역사도 짧고 저변도 척박한 탓에 행위예술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심씨도 많은 손가락질과 눈흘김, 때론 혀까지 끌끌거리며 철부지라고 빈정거리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끊임없이 작업에 매달려 왔다. 도내 행위예쑬가라야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저는 원래 화가예요. 언제부턴가 그림으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내면의 세계들을 발견할 때마다 절망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갈증을 메우기 위해 행위예술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동물의 내장이나 피 등을 이용해 엽기적인 퍼포먼스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다 산업문명과 기계화에 대한 비판으로 주제를 바꿨고, 최근에는 자연과 그린정신을 표현하는데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99년 1백회공연을 마치기가 무섭게 내추럴맵의 문을 열었다. 밖으로만 나돌던 포퍼먼스를 실내공간으로 옮겨 내실을 기하겠다는 심산에서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토템이즘의 아이콘인 끈을 비롯해 짚, 끈, 솟대, 항아리 등을 이용해 지극히 한국적이고 환경친화적인 퍼포먼스를 만들어가고 있다.
심씨는 화가와 행위예술과외에도 지난달 산조예술제 행사의 일환이었던 또랑깡대 페스티벌에 출연해 창작판소리를 선보였는가 하면 플룻과 기타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을 자처하는 등 다재다능한 끼를 소유하고 있다.
내추럴 맵은 사실 퍼포먼스공간외에도 지역 문화게릴라 또는 매니아들의 사랑방으로 유명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인데다 뭔가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간이기도 하다.
또 매주 목·금·토요일이면 깜짝무대에 오르는 뮤지션들이 심씨의 표현대로 ‘무림의 강호들’이다. 목요일에는 재즈그룹 ‘맛있는 관계’와 잼그룹 ‘The Bang’이, 금요일에는 록그룹 토러스, 토요일은 록그룹 적벽돌 등이 주인공이 된다.
이달말이면 내추럴맵의 2주년 기념행사(11월29일∼12월1일)를 준비하는 심씨는 행사기간 내내 퍼포먼스를 열고 록과 타악이 어우러지는 자리를 만들겠다며 벌써부터 부산하기만 하다.
지난 97년 전라예술제에서 하성용추모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머리를 깎은 뒤 ‘스타일이 멋있어서’대머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그는 “내추럴맵은 자연의 길을 뜻한다”면서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것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기 위해 카페이름을 내추럴맵으로 지었다”고 말했다.
심씨는 “지금까지 이곳을 매니아들을 위한, 매니아들을 만들어가는 대안공간으로 키워왔다”면서 “이곳을 통해 고정관념을 벗어던지고 일반인들에게 생소하고 낯설기만 한 퍼포먼스의 문턱을 낮추는 산실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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