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같은 어둠을 물들인 지난 21일 완주군 구이면 전주예고 입구의 한 전원주택 모델하우스. 매서운 바람이 코끝을 찌르는 초겨울밤이지만 10여대의 조명기가 토해내는 조명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씬넘버 5-2 테이크 3”라는 스탭의 짧은 한마디와 함께 ‘탁’하는 슬레이트가 정적을 깬다.
‘당신은 누구세요. 밤의 어둠속에 몸을 숨기고 나에게로 다가오시다니…’
여주인공이 추위에 떨면서 토해내는 대사는 어색하면서도 진지함만은 여느 배우 못지않다. 조명기와 마이크가 여배우를 응시하고 ‘촤르르’하는 필름만이 촬영장을 휘감는다. 사운드맨은 행여 녹음에 잡소리가 섞이지 않는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컷’하는 감독의 한마디에 정적은 사라지고 스탭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진다. 곧바로 스크립터가 ‘28초’라며 촬영시간을 확인하고, 감독과 주요스탭은 모니터를 응시하며 촬영상태를 꼼꼼히 점검한다.
이곳은 기성영화 제작현장이 아니다. 우석대 연극영화과 3·4학년 학생들의 16mm 단편영화 촬영장이다.
최근 연극영화과가 들어서고 전국제영화제를 치르면서 영화인프라가 차츰 쌓여가는 가운데 도내에서도 아마추어들의 영화제작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영화과전공학생은 물론 전북단편영화협회 회원들이 소리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단편작품들을 양산하고 있다. 우석대 학생들의 이번 영화활영이 주목을 받는 것은 필름작업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도내에서의 필름작업은 극히 드물었다. 디지털영화의 경우 카메라와 부대장비까지 합쳐서 2백∼3백만원이면 촬영장비를 장만할 수 있는데다 연출자 혼자서 촬영, 조명, 음향의 제작과정을 해나갈 수 있지만 필름작업은 10분 남짓의 단편영화를 제작하는데 대략 수백만원, 많게는 천만원이 넘는 적지않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우석대의 이번 작업은 지난 9월 시사회를 통해 선보인 전북대 영상산업단의 ‘길은 또다른 길로 이어진다’에 이어 두번째 16㎜ 순수 토종 지역영화인 셈이다. 제대로 된 촬영장비로 제작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ARRIFLEX16 필름카메라와 함께 1억원에 육박하는 조명장비가 학생들의 작업을 거들고 있다.
이달중순부터 촬영에 돌입한 이들은 이들은 기획부터 촬영은 물론 편집까지 학생들 스스로가 모든 것을 해결하고 있는 다소 버거운 작업이지만, 제법 익숙한 모습으로 한땀한땀 프레임을 채워가고 있다.
주간엔 수업을 마친뒤 오후와 야간을 이용해 영화촬영에 몰입하고 있는 만큼 거의 매일 밤샘작업으로 일관하는 고된 작업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
학생들의 제작현장에는 우석대 연극영화과 김영혜교수와 이석기겸임교수가 자리를 함께 하며 학생들을 지도한다.
이교수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화이트발렌타인’등을 촬영한 카메라감독. 자신의 제작경험을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는 그는 배우들에게 ‘너무 감정이 메말랐다’‘대사전달을 정확하게 하라’는 조언은 물론 카메라감독에게는 배우의 숨은 그림자까지 지적하는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우석대의 필름단편영화는 3·4학년이 주축이 된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해 2학년들이 촬영하는 ‘곰팡이꽃’과 기름에 빠진 물’ 등 3편이 진행되고 있다. 조만간 촬영이 끝나면 다음달까지 후반작업을 마치고 시사회를 갖는다.
2학년들의 작품은 대사가 없고 상영시간이 5분정도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10분분량에 대사까지 있어 더욱 분주할 수밖에 없다. 프로듀서와 감독은 4학년인 이상희와 강은정씨가 맡았고, 나머지 스탭들은 3학년생들로 꾸며졌다.
김교수는 제작진에게 영화제작은 공동작업이고,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라고 강조한다. 학생들은 이번 작업에서 프로듀서와 감독은 물론 시나리오, 촬영, 미술, 편집, 조연출, 사운드 등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이를 통해 제대로 된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있다.
김교수는 “영화는 시나리오부터 촬영, 조명, 음향 등이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이라면서 “영화인프라가 정착되기 위해서라도 미래의 영화인력들에게 제대로 된 작업방식을 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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