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시인이 새시집 ‘나무’(창작과 비평)를 펴냈다. ‘그 여자네 집’ 이후 4년 만의 시집이다.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있었지/강물에 눈이 오고 있었어/강물은 깊어졌어/한없이 깊어졌어/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있었지 다시 봄이었어/나, 그 나무에 기대앉아 있었지/그냥, 있었어 -‘나무’중에서.
문득 옆에 와있는 봄처럼 그의 시는 눈부시다. 시로 침묵하고 있는동안 그는 산문이며 동시며 동화로 우리를 즐겁게 했지만 역시 그의 신작시들이 전하는 반가움은 따로 있다. 시집에 실린 시는 스물다섯편. 많지 않은 이들, 짧거나 혹은 아주 긴 시들속에서 그의 서정적 시세계는 더욱 깊어져 있다.
마치 한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한 그의 시들은 소박한 일상적 삶을 있는 그대로 꿰어낸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나즈막한 소리는 일견 그만그만하게 전해지는 듯 싶지만 소리꾼이 저 가슴 깊숙이에서 소리를 뽑아올리듯이 토해내는 절규와도 같은 통한으로 울리는 시들은 우리들의 가슴을 헤집어 놓는다. 그의 고향이 죽어가고 있는 까닭이다.
방학이면 어김없이 어머니가 있는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시인 앞에 고향은 포크레인의 무참한 폭력앞에 파괴되며 잔뜩 주눅들어있다. 폭력의 주범은 ‘고향산천을 막무가내로 뜯어고치는 건설의 포크레인’이다.
‘야, 근디 너그들, 정말이지, 어디까장 올라가서 나무를 베어 넘기고 땅을 파뒤집고 길을 뜯어 고칠래. 그 지랄(그래, 이건 삶이 아니라 지랄이다)을 언제까지 할 것이야. 엉! 그 일이 끝이 있을 것 같냐? 아, 아, 시는 망했다. -‘세한도’중에서
그의 외침이 단순한 분노로서가 아니라 더욱 절절하게 전해지는 이유는 또 있다. 파헤쳐진 고향의 산과 들이 껴안은 상처 만큼이나 무위자연의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이 더욱 절실한 까닭이다.
그의 이번 시들은 한껏 몸낮춘 순응의 자세로 자연을 올려다본다. 그다운 몸짓이지만 이런 저런 세상의 번잡스러움을 향한 그의 언어들은 확연하게 깊어지고 그윽해져있다. 그러나 그것은 관조의 세계로서가 아니라 더 치열하게 세상과 조응하는, 섬진강 시인다운 세계다.
마암분교 교사로 어린 제자들과 널리 알려진 그는 5년 근무 기한이 되어 3월 자신의 모교인 덕치초등학교로 전근을 갔다. 시로 더 가까와진 마암분교 제자들과의 헤어짐이 못내 아쉬운 지 시인은 여러번 “정말 섭섭하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출퇴근길. 마암분교 아이들은 그에게 더욱 큰 그리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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