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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남원시립국악단 '만복사 저포기'



탈과 망토를 쓴 코러스는 ‘마흔 길 우물바닥 먼지만 풀썩풀썩’나고 ‘멀쩡하던 서른 총각 제 집에서 횡사’하는 무섭고도 끔찍한 가뭄과 흉년을 노래하며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극의 흐름을 암시한다. 이때 세처자의 원혼이 춤을 추며 무대를 가로지른다.

 

지난 20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모악당에서 열린 남원시립국악단(단장 임이조)의 창작창극 ‘만복사 저포기’(극본 최정주·연출 오진욱)는 이렇게 시작됐다.

 

막이 열리면 만복사 경내의 앞뜰. 왼쪽으로 흐드러지게 꽃이 핀 배나무 한 그루, 오른쪽엔 5층 석탑. 탑돌이를 하는 마을 처자들이 둘레를 선다. 그리고 그들을 히롱(?)하는 양유와 판돌, 천쇠, 덕만이 등장한다.

 

“누가 객원배우인지 모르겠다”는 최학렬씨(천쇠 역·연극인)의 말처럼 시립국악단 단원들이 보여준 연기는 이미 아마추어 연기자가 아니었다.

 

대극장이라는 특성으로 조금은 과장된 몸짓과 대사를 보이기도 했지만 ‘판소리 아니리 하듯’하던 기존 창극의 대사에서 벗어나 정통 연기와 마당극적 요소를 가미한 대사법은 사뭇 신선하게 다가왔다.

 

또 무대를 크게 활용하는 배우들의 동선이나 새소리·물소리·목탁소리 등 다양한 효과음 활용, 희극적 동작으로 연결된 활극, 장엄한 깃발 춤은 색다른 느낌을 갖게 했다.

 

그리고 향토성 깊은 남원의 상여소리와 ‘에헤이야 어허이여리싸∼’로 이어지는 장원질소리, 고깔에 장삼을 입고 빠르게 앞뒤서며 턴하는 임이조 선생의 바라춤은 정갈한 창극의 맛을 선사했다.

 

생사를 넘어선 절실한 사랑, 비속함과 점잖음을 막힘 없이 가로질러 이들이 내놓은 소리도 참 근사했다. 특히 애절비통한 연기를 보이며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신 임현빈씨(28·남원시립국악단원·양유 역)는 연기뿐 아니라 입에 쩍쩍 달라붙는 창으로 넘치는 소리꾼이 될 가능성을 보여줬다.

 

2시간동안 펼쳐진 이번 공연은 무대생활 보름 년에 접어든 배우 오진욱의 첫 대극장 연출의 시험무대이기도 했다. 듬성듬성 빈 좌석도 보였지만 근래들어 꽤 많은 관객이 모였고 좀처럼 박수소리가 식지 않았던 것을 고려한다면 일단 합격은 한 것 같다.

 

물론 관객에 대한 배려가 지나쳐 다소 장황한 설명처럼 느껴진 장면이나 막의 분리가 많았다는 점, 일부 출연진의 어색한 연기, 조명의 불안한 떨림 등은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지적되지만 ‘만복사 저포기’를 본 많은 예술인들은 “군더더기처럼 보이는 몇 장면을 수정한다면 국제적인 상품으로도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창극작업을 위해 고군분투한 이들이 전면에 나설 수 있도록, ‘아차하면 사라질 꿈’이 되지 않도록, 판을 닦고 분위기를 성숙시키는 작업이 이제 우리의 몫이다.

 

최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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