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는 무대 가득 빨갛고 까만 천을 깔고 사내를 기다린다. 천을 바닥에 깔면 요가 되고, 그 속으로 들어가면 신혼방이 된다. 몸을 굴려 칭칭 감으니 부끄럼 가리개가 된다. 밤만을 지새고 돌아가는 로미오의 뒷모습은 더 애달프다.
배우들의 큰절 인사가 끝나고 연출 오태석씨는 신발을 벗은 채 무대에 선다. 무대에 대한 그의 깍듯한 기운이 느껴진다. 공연이후 연출과의 대화는 흔치 않은 법. 남은 이들은 그와의 만남이 그저 감격스럽기만 하다.
지난 11일과 12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연지홀에서 관객을 만난 ‘로미오와 줄리엣’(극단 목화). ‘로미오와 줄리엣’은 케플렛 가문과 몬테규 가문의 분노 속에서 태어난 연인의 슬프고 처절한 사랑의 종말을 맡는 셰익스피어의 서정비극.
하지만 극단 목화는 한국의 돌담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담았다. 재너미집 사내(까마귀)와 갈머리집 처녀의 사랑이야기. 두 사랑은 달빛 아래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으며 밤을 지샌다.
무대의 앞과 중간, 뒤를 충분하게 활용하며 앞 사건과 뒷 사건이 맞물려 돌아가고 관객과 숨바꼭질을 하듯 암전이 없는 장면 전환은 자연스럽다. 연출의 기발함이 여기저기 돌출 되면서 관객을 놀라게 한다.
구씨네 무리의 북춤과 문씨네 무리의 소고춤. 갈머리집 처녀의 칼춤. 북과 징, 쇠를 이용한 장단 놀음도 한껏 흥을 돋운다.
툭툭 내뱉듯 가볍게 흘리는 배우들의 구성진 대사는 그들의 움직임만큼 힘이 넘쳤다. 원작과 달리 증오가 아닌 ‘장난치듯 싸우는’ 두 가문의 병사들. 싸우다 정든다는 우리 옛말이 바로 그것인 듯 하다.
하지만 극의 마무리는 관객을 당황하게 한다. 원작에서 보이는 화해가 아니라 반목이 깊어져 결국 두 집안 사람들이 최후를 맞는 것.
그래서일까. 관객의 예측을 뒤집어 놓은 의외적 결말은 배우들이 큰절인사를 보일 때까지 관객들로 하여금 선뜻 박수소리를 내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속상한 결말(?)에 대한 관객들의 의외적 반응은 아니었던 듯.
무대에 선 연출 오태석씨. 채 말을 잇지 못하도록 연이어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의 때늦은 반응은 이번 공연에 대한 문화적 충격을 대신 하는 것 같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