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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교수의 한문속 지혜찾기] 부채

 

 

紙與竹而相婚하여 生其子曰淸風이라.
지여죽이상혼     생기자왈청풍

 

종이와 대나무가 서로 결혼하여 자식을 낳으니, 그게 곧 바람이라.
 
부채에 대하여 읊은 옛 시 한 구절이다. 원작자가 누구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요즈음이야 에어컨이 일반화되어 부채가 일상생활에서 멀어져 버렸지만 십 여 년 전만 하여도 부채는 여름철의 생활 필수품이었다.

 

더울 때 시원하게 부치는 것은 물론 낮에는 햇볕을 가리고 밤에는 모기를 쫓고 심지어는 길 가다가 빚쟁이를 만났을 때 얼굴을 가리는 데에까지 부채의 용도는 여덟 가지나 된다고 한다. 그래서 흔히 부채를 팔덕선(八德扇)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해마다 5월 단오날에는 이처럼 다양한 용도의 부채를 서로 선물하는 것이 우리의 세시풍속이기도 하였다.

 

그런 부채가 이제는 일상생활에서 많이 멀어졌다. 그러나 요즈음에도 더러 아름다운 부채를 멋스럽게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에게 아직도 부채에 대한 향수와 부채로 더위를 쫓던 시절의 여유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합죽선으로 이름난 전주에는 그런 사람이 더욱 많다. 합죽선이야말로 대나무와 종이가 결혼하여 바람이라는 아들을 낳는 부채이다. 선면에 정결한 사군자나 산수화 한 폭, 혹은 격조 있는 글씨 한 폭이 쓰여진 부채를 부칠 때 나는 바람은 분명히 선풍기바람이나 에어컨 바람과는 다른 멋이 있다. 이 여름, 아무리 바쁘더라도 이따금씩 그런 여유 있는 바람을 느껴보도록 하자.

 

紙:종이 지  與:하께 여  婚:혼인 혼  淸: 맑을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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