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나인하씨(35)의 작업은 자기 삶의 흔적을 통해 자아를 찾는 탐색 과정에 놓여 있다. 4일부터 19일까지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의 오스갤러리에서 열리는 초대전의 작품들도 물론 같은 연상의 것들이다.
"재료의 물성을 통해 우리 삶의 흔적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철저히 내 체험을 형상화한 사적인 기록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사라지거나 잊혀지는것들을 표현하는 상징입니다."
대학원 시절부터 재료가 갖는 물성(物性)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나씨가 최근 몰두하고 있는 소재는 스텐레스와 철. 대부분의 작품이 스텐레스의 견고하고 매끈하게 다듬어진 틀 안에서 재현된다.
액자의 형태로 드러나는 그 틀은 우리 삶을 구속하는 규범을 상징하지만 나씨는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규범 또한 달라질 수 있음을 오브제의 다양한 변형으로 제시한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은 '기억속에…'와 '자아찾기' 연작이다. 오브제 작업이면서도 드로잉을 비롯한 표현의 행위를 최대한 절제시킨 듯한 그의 작품들은 자신의 존재를 조심스럽게 찾아나선, 그래서 동적이기 보다는 정적인 이미지가 훨씬 짙다.
철가루와 물을 혼합해 종이위에 드로잉한 작품들은 스텐레스가 주는 느낌과 질감의 맛을 반전시키는 효과와 함께 부식해버린 철가루의 색깔을 통해 지나간 삶의 흔적이 덧없음을, 그러나 결코 지워질 수는 없는 흔적으로 남아 있음을 이야기한다.
마치 은밀하고 우울한 일기를 보는 것 같은 이들 작품을 통해 작가는 자신에게 묻는 질문을 관객들에게도 던진다.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고.
그러나 똑같은 답은 없을 터. 다만 '나는 어떤 흔적을 남기고 있는가'를 되돌아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인하의 작품은 예술적 의도를 충분히 성취할 수 있지 않을까.
전주시내에서 다소 멀리 떨어져있는 것이 흠이지만 가을 낮, 야외 갤러리를 찾아가는 설레임도 모처럼의 즐거움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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