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후기 8명창 중의 한명인 장자백의 가족 계보를 낱낱히 밝혀낸 논문이 발표됐다.
군산대 최동현교수가 오는 16일 판소리학회에서 공개할 ‘장재백과 그 일가의 판소리 인맥에 관한 연구’. 이 논문을 통해 최교수는 정확한 고증자료 없이 통용되어온 장자백에 관한 활동상황과 가계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내 그동안 판소리 연구의 취약점으로 지적되어온 ‘실증적연구’의 한계를 극복해내는 모범을 보인다.
족보와 호적,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던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한 이 논문은 장자백의 본명이 ‘장재백’이고, 족보상의 이름은 학순, 당대의 여류명창 이화중선은 그의 조카 장득진의 첩이었으며 한때 전주를 대표하는 소리꾼이자 춤꾼으로도 기량을 인정받았던 장녹운이 그의 증손녀였다는 사실 등을 담았다.
특히 눈길을 모으는 것은 전라감영에서 작성한 ‘연수전중용하기(宴需錢中用下記)’의 내용.
전라감영에서 잔치를 하고 지출한 내역을 정리한 이 문서에는 이날치 김세종 장자백을 비롯한 네명의 소리꾼들에게 준 액수가 나와있는데, 이날치와 장자백은 50냥을, 김세종은 1백냥을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소리꾼들이 출연한 대가로 얼마를 받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첫 자료”라고 소개한 최교수는 “김세종의 제자였던 장자백이 50냥을 받았던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이날치가 서편제소리를 대표하는 대명창이었는데도 김세종의 절반밖에 안되는 대가를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날치보다 김세종의 소리가 평가받았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이화중선과 장씨 일가의 관계도 새롭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화중선이 이미 열일곱살에 남원 박씨 문중으로 시집을 왔으나 소리꾼 장득주에게 소리를 배우기 위해 그의 동생 장혁주와 “매파도 없이 친히 그 사람과 만나 가약을 맺고 소리를 배웠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교수는 이화중선이 장득진 자신의 첩이었음을 호적을 바탕으로 바로 잡았다.
이밖에도 장자백이 1887년 무과에 급제하여 교지(장녹운이 보관해옴)를 받았으며, 유성준은 장자백의 매제, 김정문은 장자백의 종손녀서(從孫女胥)였고,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였던 성운선(작고)도 그의 외종증손녀였다는 사실이 자세한 가족 계보로 드러나있다.
당대 명창들의 친족 관계와 그 혈족을 실증적 자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낸 것은 이번이 처음.
최교수는 “현재 판소리 연구는 상당부분 진전되어 있지만 아직도 구체적인 기록과 족보, 호적 등을 통합하고 비교하는 실증적 작업이 미진한 상황”이라며 “앞으로 판소리 연구의 기본이 되는 명창 연구는 그들의 가계를 포함한 기록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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