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폭력 때문에 집을 나간 어머니를 죽었다고 단정짓는 아버지. 그는 자신의 딸인 소녀와 아내를 찾아나선다. 그러나 어느 순간 폭력의 대상은 소녀가 되고…'
가부장적 권위를 증오와 연민의 시선으로 그린 이 작품은 '한국 단편의 선택:비평가 주간'의 '여성영화의 자기발견'에 초대된 강지이 감독(31)의 '미친 김치'다.
이 영화의 낯익은 풍경은 군산 해망동. 촬영 전체가 군산에서 이루어졌다. 강감독은 전북대 사범대 출신. 영화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 '임용고시를 준비한다'는 외피를 쓰고 독립영화협회 워크숍을 수강했던 그는 한국영상원 연출과의 늦깎이 장학생이 되고서야 집에 "영화를 하겠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제작한 영화는 다섯 편. 지난해 '원하는 대'(2002)가 전북여성영화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했고, 이번 작품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자막 번역 및 프린트 제작지원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얼마전 한 제작사 스탭으로 합류했지만 대형영화 제작 계획이 취소되는 바람에 다시 백수가 됐다.
그래서 "기간제 교사 자리라도 찾아야 하는 건 아닌지 먹고 살 궁리”를 하고 있다. 강감독은 한국의 수많은 독립영화 감독 가운데 자신은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현실은 유상곤 감독의 말처럼 "허전한 아름다움”으로 상징되는 국내 독립영화 감독들의 현실을 대변한다.
올해 비평가위원회(문학산·맹수진·유운성·이명인·이상용 이상 5명)가 선정한 한국단편은 20편. 90년대 후반이후 꾸준한 작업을 통해 대안 영화의 미학을 제시해온 김정구·채기·유상곤·오점균 등 4명의 독립영화 감독과 젊은 감독들의 자의식, 폭력에 접근하는 디지털영화의 경향, 여성영화의 자기발견, 그리고 독립 영화에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악몽의 정체에 주목한 작품들이다.
독립영화 제작의 현실은 전에 비해 많이 나아진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제작지원 프로그램이 생겨 제작비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는 통로가 열렸고,
각종 영화제의 든든한 후원도 있다. 독립다큐 진영의 확산은 저예산 장편영화로 이어지기도 하고, 적지 않은 작품들이 해외영화제에도 진출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영화 진영의 감독들이 안고 있는 환경이나 그들을 바라보는 현실은 여전히 불안하다. 가장 어려운 현실은 배급 시스템. 평론가 이상용씨는 "배급망을 갖춘 일부 장편들이 '와라나고'라는 말을 탄생시켰듯이 독립영화가 광장으로 나서기는 하늘의 별따기”라며 "독립영화전용관 이야기도 현실적으로 정부가 움직여주지 않으면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감독들의 열정과 에너지를 생산적으로 현실화시키기에는 아직 멀다”. 그것이 독립영화감독들이 진단하는 현실이다.
지난 29일 오후 5시 전북대 건지아트홀에서 '독립영화 그 이상과 현존'을 주제로 열린 학술세미나에서도 독립영화감독들이 안고 있는 불안한 현실은 논의의 화두가 됐다.
비평가위원회의 평론가 이상용씨 고호빈·정서경·오점균·도내리 감독이 패널로 참여한 이날 세미나는 최근 제기되고 있는 독립영화 정체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의식한 듯 독립영화의 개념정리부터 시작됐다.
"많은 독립영화 감독들이 밀실에 갇혀있다. 타인의 작품을 모니터하지 않는 풍토가 영화계 내부에 대화를 단절시켰다”
이상용씨는 "독립영화에 대한 적극적인 소통이 사라져 개념조차 모호해진 것이다”고 지적하며 "동세대 영화감독들의 영화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고호빈 감독은 "영화제가 늘어나 상영기회를 쉽게 얻을 수 있는 현실이 오히려 감독과 관객을 더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비평가위원회는 "독립영화에서 작가의 의미는 완성이나 완전이 아니라 오히려 불완전에 있다”며 "독립영화의 운동성도 밀실에서 벗어나려는 꾸준한 노력이 있을 때 비로서 찾을 수 있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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