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동화 선생님을 기억하는 자리입니다. 함께 하시겠습니까”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故 박동화선생(1911∼1978)의 삶과 작품은 전북 연극사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자취가 크다. 오늘의 전북연극이 서울 중심의 주변부적 연극이 아니라 지역연극의 한 역사를 쌓아 가는 중심으로서 위상을 인정받는 것도 선생이 쌓은 역사를 딛고 선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선생의 추모 25주년이 되는 이 달 22일은 창작극회의 '상봉'(연출 류경호·작가 최기우)이 충남 공주에서 열리는 제21회 전국연극제에 전북대표로 참가해 공연을 하는 날과 같다. 이번 연극에 참여하는 30여명의 후배 연극인들이 공주로 떠나기 앞서 선생을 기억하는 조촐한 추모식을 준비했다.
"소리문화의 전당 부근을 지날 때마다 죄송한 마음만 가득했었다”고 고백하는 류경호 창작극회 대표는 "선생의 동상에서 소주도 한잔 올리고 과일도 깎아드리면서 공주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말씀드릴 생각”이라고 밝혔다. 또 지역의 모든 후배 연극인들이 모처럼 마련된 이번 추모식을 함께 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선생의 추모식은 21일 늦은 2시 전주 체련공원에 있는 선생의 동상 앞에서 열릴 예정이다.
■ 故 박동화 선생
1959년 희곡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가 국립극장 희곡공모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연극활동을 시작했다.
전북대 극예술연구회(현 전북대 기린극회)를 창립, 1964년 전북연극의 모태가 되는 극단'창작극회'를 만들어 40여편의 희곡과 1백여회의 공연을 통해 60∼70년대 전북연극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1964년부터 14년간 전북연극협회 전북지부장을 역임했으며, 1964년 전북문화상을 수상했다. 선생의 장례는 전북 최초로 문화예술인장(葬)으로 치러졌다.
90년대 초 연극계 원로들을 중심으로 박동화선생에 대한 재조명 사업이 공론화 되면서 1995년 박동화연극상 제정과 함께, 1999년 연극인과 미술인 등 도내 문화예술인들의 정성으로 기금을 마련, 그해 6월 22일 전주체련공원에 선생의 동상을 마련했다.
희곡으로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1959)'여운'(1962)'두 주막'(1964)'망자석'(1967)'바다는 노하고 산은 울었다'(1969)'이유 있다'(1971)'느티나무골'(1972)'산천초목'(1973)'꿈'(1975)'사는연습'(1977)'등잔불'(197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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