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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 김연씨가 여는 덕진공원 소리판

 

 

"아이고, 소리가 어떻게 좋던지, 참말 소리 좋소"
"거까지 들립뎌? 내 소리가 크긴 큰갑소. 여까장 오셨으니 쑥대머리 한 대목 불러드리야겄네."
"좋제"

 

21일 오후 4시 30분 덕진공원 취향정 앞 둔덕의 소나무 아래서 펼쳐진 소리마당의 흥겨운 풍경. 투박한 전라도 사투리가 더해지니 그 자체로 소리판이 따로 없다.

 

김연 명창이 북을 잡고 '쑥대머리'를 뽑아내기 시작하자, 흩어졌던 관객들이 금새 몰려든다. "얼씨구, 조~타" 추임새가 없는 소리판은 무슨 맛이 겠는가. 어김 없이 여기 저기서 귀명창들의 맞받는 소리로 야외소리판의 신명은 절정이다.

 

"정식 소리판도 아니고, 연습 삼아 시작한 일인데 의외로 덕진공원을 찾아온 사람들이 좋아하네요.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번쯤 귀기울이고, 눈길을 주고 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것으로 족합니다. 연습으로 치자면 더없는 호사지요."

 

6월 첫째주부터 시작된 덕진공원의 소리판 방장 김연씨(38, 전북도립국악원 판소리부 교수). 매주 토요일 오후 5시면 어김없이 판을 여는 그는 소리판이 제대로 자리잡기도 전에 언론에 공개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그가 덕진공원에 소리판을 열기로 작정한 것은 오래 전부터. 20년 전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과 석촌호수에 놀러갔다가 듣게된 명창 박봉술선생(작고)의 소리에 마음을 빼앗겨 결국은 소리꾼이 된 그는 언젠가 명창이 되면 자신도 청중들을 찾아가는 소박한 소리판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었다.

 

"마음먹고 찾아가야 들을 수 있는 공연도 중요하지만 우연히 만나는 판소리가 대중들의 마음속에 훨씬 깊게 자리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제 자신이 그랬거든요."

 

그러나 자신의 소리 공부에 얽매어 실행에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명창의 반열에 오르는 과정을 어렵게 끝낸 것은 지난해. 여러차례 도전했지만 번번이 코앞에서 실패했던 전주대사습 대신 국창 임방울 판소리대회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그는 명창의 반열에 섰다.

 

"이제 진짜 소리 공부 시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한결 마음의 여유가 생겨 누구나가 들을 수 있는 소리판을 열겠다고 나선 그에게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마 다른 선생님들이나 선후배들에게는 마땅치 않은 일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명창 체면을 손상시킨다는 비난도 있을 수 있고. 그래도 이런 자리가 소중하다는 확신이 용기를 갖게 했지요."

 

차에 싣고온 비닐 돋자리를 펴고 북을 잡고 앉으면 소리판 준비는 끝. 고수도 따로 없는 무대에서 그는 1인 2역, 울고 웃으며 소리판을 주도한다.
돋자리 한쪽 끝에 걸터 앉은 60대 아주머니나 젊은 시절 소리판 꽤나 쫒아다녔다는 70대 할아버지가 지금 내로라하는 명창의 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그렇게요. 아이고 대통령상까장 받은 명창이라는디 이렇게 찾아와 소리를 해주니 얼매나 고마워. 오늘은 '호남가' 좀 들어봤으먼 좋겄네."

 

소리에 취해있던 유도영옹(75, 전주시 남노송동)이 작정하고 소리를 청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부터 치고 나선다.
오후 5시에 시작하는 20여분의 분수쇼가 끝나자 다시 북채를 잡은 김씨가 내내 엄마 주위를 맴돌던 딸 정인이에게 '니가 한 대목 해보라'며 장단을 맞춘다. "이산 저산 꽃이피니~" 초등학교 2학년인 정인이의 야문 소리가 다시 관객들을 불러 모은다.

 

호수를 바라보며 앉아 있던 젊은 연인들도 등돌려 아예 소리판의 청중이 됐다.
방금 전까지 공원안 분위기를 잡았던 팝송과 클래식과 대중가요 방송 끝머리에 어깨춤 들썩이게 하는 판소리 한마당이 얹혀지면서 분위기가 바뀐 시점. 서양음악과 우리음악의 절묘한 반전이다.

 

토요일 오후 5시 덕진공원안에서 명창 김연이 꿈꾸는 판소리 대중화는 그렇게 뜨거워지고 있다.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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