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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중의 문학편지] 죽은 시인의 사회?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말이 종종 쓰인다. 원래 미국에서 만든 영화의 제목이었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시인이 살아남을 수 없는 삭막한 인간세상'이라는 뜻으로 주로 사용된다. 이 말과 뜻은, 은연중에 시인이란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이며, 그런 존재를 넉넉하게 포용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라는 소박한 이데올로기를 포함하고 있다. 과연 시인이 많이 서식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인가?

 

1989년에 만들어진 <죽은 시인의 사회> 는 잘 만든 교육 영화이다. 명문 고등학교에 영어 선생(우리로 치면 국어선생)으로 부임한 한 어른이, 대학 입시 교육에 찌든 젊은이들에게 젊음과 자유와 도전의 의미를 일깨우지만, 결국 완고한 세상에서 추방당하는 과정을 줄거리로 삼았다. 이 선생의 독특한 교육철학은 주로 시 교육을 매개로 드러나 있어, 척박한 교육 풍토에 답답한 우리에게 참교육뿐만 아니라 문학교육, 특히 시 교육의 의미와 방법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이후 진정한 교육의 부재와 인문 교육의 황폐화를 고민하는 자리,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암담한 조건을 가리키는 상징적 표제로 '죽은 시인의 사회'가 사용되게 된 듯하다. 그러나 여기에 상당한 개념적 오해와 문화적 왜곡이 개재되어 있다고 나는 짐작한다.

 

원래 영화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는 거창한 사회 풍자의 뜻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영어 제목 에서 소사이어티(사회)는 국가나 민족, 문화 단위의 큰 사회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작은 모임에서도 쓰인다. 그러니까 원제목을 <'죽은 시인' 소모임>이나 <'죽은 시인'회(會)>라 옮기는 것이 옳았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바이지만, '죽은 시인들(Dead Poets)'이라는 말도, 사회가 살해한 시인들이라는 뜻이 아니며, 이미 존재하는, '죽은 시인들만이 진정한 시인'이라는 시구를 마음에 들어 한 성원들이 모임의 이름으로 고른 중심 낱말인 것이다. 과연 시인은 죽어서야 인간이라는 누추한 껍질을 버리고 책 속에 영원한 시인으로 순결하게 남을 것 같다. 그러므로, 적어도 영화 속에서, 시인의 죽음은 애통해 할 일이 아니다. 어쨌든 첫뜻이 왜곡되어도 이만저만 왜곡된 것이 아닌 셈이다.

 

영화의 문제 제기는 진정한 교육이며 그 구체적 사례로 시 교육이 들고 있다. 시 교육은 인문 교육의 핵심이며 청소년들에게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게 하는 양질의 교육 도구이다. 영화 속에서 선생도 학생도 시인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시를 가르치고 배우면서 건강한 인격의 성장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었다. 참교육의 문제, 시 교육의 문제를 우리는 '시인'의 문제로 뒤바꾸고 말았다. 

 

우리 사회에서 시인은 숫자로는 그리 적은 편이 아니다. 물론 시인들이 시만 써서 먹고 살지는 못하게 되어 있으므로 이 사회가 시인을 별로 배려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시인의 이런 처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동서양에 다름이 없다. 시인의 숫자나 시인에 대한 처우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시인들이 좋은 시를 쓰는 일이다. 이것은 시인의 책무이다. 그리고 시인들이 공들여 쓴 좋은 시들을 대중에게 올바른 방도로 전달하여 함께 즐기는 일이 중요하다. 이는 우리 사회의 책무이며, 문학선생들의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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