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첫 만남이 설레이듯 가을의 깊은 밤 음악과 춤이 만나는 자리 '소리와 춤의 명상'은 관객들로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다.
먼 옛날 실크로드를 통해 동과 서가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을까.
황병기와 나효신의 만남 '비단길 그리고 아크마토바의 뮤즈'. 국악과 현대음악의 만남이나 두 작곡가들의 만남을 넘어, 문학과 소리, 소리와 춤, 작곡가와 관객 등 작은 공연장 안에서 수많은 만남들이 빚어낸 결과는 한마디로 낯설다.
2시간 10분여에 이르는 긴 시간과 1분에 몇가지의 음정을 낼까 말까한 정도의 단조로운 연주는 작품성을 떠나 빠른 속도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을 힘들게했다. 그러나 평소 접하기 어려운 곡 선정이나 연주기법, 나씨의 작품해설 등은 낯설음과 바꿀만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효신 '아크마토바의 뮤즈'와 황병기 대금독주곡 '자시'는 한 밤중 뮤즈(음악의 신)를 기다리는 절실함과 방문의 기쁨을 표현한 곡. '아크마토바의 뮤즈'는 러시아 여류시인 아크마토바의 시 '뮤즈'를 읽고 '하마단'은 황병기가 현담의 시를 읽고 그 감동을 음악으로 옮긴 것이다. 줄을 당기고, 활을 조이는 과정부터 음악에 포함되는 '황하가 푸르도록'은 조율과 음악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한 관객들의 편견을 깨뜨리는 무대.
소리와 춤이 어우러진 '자시'와 '정지향'은 더 특별했다. '자시'에서 이경호(전북대 무용과 교수)는 독립된 공간으로 무대 위에 또다른 무대를 마련, 그 위에서 뮤즈를 연상시키는 춤을 췄다.
'정지향'에서는 신용숙(현대무용단 사포 대표)가 곡을 듣고난 느낌을 자유로운 몸짓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주제와 달리 소리와 춤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무대가 적어 이들의 소통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제한된 음악재료들이 사용된 '음악'은 88년 작곡된 나효신 초기작품. 남편인 토마스 슐츠(스탠포드대 음대)교수와 함께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버전을 연주했다.
지난 28∼29일 있었던 '소리와 춤의 명상' 첫 만남 홍신자와 원일의 만남 '구운몽'역시 색다른 경험이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기괴한 소리를 내뱉는 보이스 퍼포먼스에 거부감이 들지만, 쉽게 자리를 뜰 수 없게하는 그들만의 카리스마가 관객들을 붙잡았다.
하얀 천을 뒤집어쓰고 알 수 없는 몸짓을 보여주더니 한바탕 웃기 시작한다. 긴장이 확 풀어지면서 구운몽의 깨달음이 이뤄지는 순간 관객들도 크게 웃고 자유롭게 춤을 춘다. 원일의 음악은 잔잔하게 혹은 격렬하게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일깨우는 홍신자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
또 한편의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이애주와 wHOOL이 함께하는 '소리·춤·선(禪)'이다.(3∼4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 저녁10시) 두번의 만남을 겪으면서 새로운 충격을 접한 관객들은 그 느낌이 어땠든 이제 세번째 만남을 기다린다. 낯설음을 통해 느끼는 신선한 카타르시스가 그들의 정체됐던 감정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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