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영화의 거리'를 지날 일이 생겼다. 거리를 걷고 있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 가로등, 보도타일과 잘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한 해질녘이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보다 한참 전 보았던 시장통의 양장점 모습이 떠오르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젊은이들이야 알 리가 없겠지만 과거의 패션을 주도해 왔던 양장점은 90년대 들어서부터 거의 없어지고 도심 변두리나 시골에서 가끔 눈에 띨 뿐이다. 양장점에서는 고객이 디자인과 소제를 먼저 주문한다. 브랜드나 디자이너 브랜드에서는 고객의 디자인 선택권이 없거나 차선에 불과하다. 디자이너가 먼저 소개와 디자인을 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디자이너 브랜드나 양장점이나 고객의 개성이 사이즈를 맞추는 것에는 변화가 없다.
양장점 제품이 디자이너 브랜드제품으로 바뀌면서 따라오는 변화의 차이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가격의 차이를 만질 것이고 어떤 이는 디자인을 또 어떤 사람은 제품의 캘리터를 이야기 할지 모른다. 그러나 양장점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떠오른 것은 바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우리의 문화가 많이도 변해오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양장점에서 옷을 맞춰 입었던 시절에 우리의 문화수준은 그 정도였다. 그 당시 디자이너는 사회적으로 사치품을 만들어 내는 직업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2000을 훌쩍 넘긴 지금 우리사회에서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패션에만 국한 되는 말이 더 이상 아니다. 웹디자이너나 헤어디자이너에서 애완견 디자이너까지 심미적이고 예술적인 가치가 필요한 곳이면 어떤 분야에서든지 쓰여 지고 있다. 핸드폰이나 거리의 가로등 그리고 쌀 포장지등 디자인을 이야기 하지 않은 곳이 없고 디자인을 이야기 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
어둠만을 밝히는 기능의 가로등에서 사람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가로등의 예술성은 단순히 감성으로 느껴지는 것 이상의 가치를 주고 있다. 보기에 좋고 기분이 좋아져 사람이 모이게 되면 경제적 부가가치가 자연히 높아지게 된다는 사실을 이제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영화의 거리'를 만들어낸 공무원이나 설비를 했던 사람이나 모두 디자이너인 셈이다. 파리의 에펠탑이나 배네치아 수상도시만은 못할지 모르나 거리 전체를 사람과 어울리게 디자인한 디자이너들의 가치는 에펠탑 못지않은 칭찬을 받을 만하다. 사실 그 탑 앞에 섰을 때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 앞에 섰다는 생각 외에 다른 느낌을 이야기한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의 문화적 예술적 수준이 높아진 것 이상으로 디자인과 디자이너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풍부해 졌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기에 양장점에서부터 시작한 패션 디자이너들의 역할이 가장 컸다는 것을 감히 이야기 하고 싶다. 우리의 생활에서 디자인을 일상으로 이야기하게 하고 눈으로 보는 심미안을 높여 왔고 사치하고 평가 받았던 부가기치를 만들어 온 직업군이 바로 패션 디자이너였다. 인터넷과 컴퓨터가 머지않은 미래를 지배할 것 같지만 아직도 어린 소녀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중의 하나가 패션디자이너라 한다. 디자인은 어떤 상품에 부가가치를 주어 경쟁력을 더하게 한다. 디자이너가 많아진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부가가치가 커지고 경쟁력이 커진다는 이야기다. 영화의 거리와 소녀들에게서 우리의 미래를 본다.
/유춘순 디자이너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