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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문서의 향기]조선시대의 호적(2)

 

여성의 지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의원 중 일부를 아예 여성에게 할당하자는 주장도 있다. 공무원도 일정 비율을 여성으로 뽑는 법안이 마련되는가 하면, 자식이 어머니의 성을 취득할 수 있는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 전통사회에서 여성들이 남성들로부터 당했던 차별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움직임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한다.

 

여권 신장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은 으레 조선시대에는 여성도 호주(戶主)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호구단자에서도 여성이 호주로 등장한 예는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18세기 후반 순창 인계면에 살던 민씨부인(閔氏婦人)도 호주로 등장했던 조선시대의 여성 가운데 하나였다. 본관이 여흥(驪興)이었던 민씨부인은 같은 현 동계면 귀미리에 살던 양옥수(가명)와 10대 후반에 결혼한 후, 두 아들까지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두 아들의 혼인도 치르기 전에 남편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녀는 이제 두 아들만을 데리고 살아야 했다.

 

남편이 사망한 그 이듬해인 병인년(丙寅年)이 되자 그녀는 새로운 호구단자(戶口單子)를 만들어 관(官)에 제출하게 되었다. 호구단자란 3년마다 한번씩 호주가 호(戶)의 구성원을 적어 관에 제출하는 문서였다. 그런데 민씨부인은 고민에 빠졌다. 호주때문이었다. 남편이 사망하였으므로 누군가가 그 뒤를 이어 호주가 되어야 했는데, 아들들이 아직 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본인이 호주로 나섰고, 호구단자도 유학양옥주고 대과부민씨령삼십삼갑자(幼學楊玉洙故 代寡婦閔氏齡三十三甲子)라고 썼다. 양옥수가 사망하였으므로 이제 자신이 호주를 대신한다는 뜻이다.

 

민씨부인이 호주가 되었으므로 사부(四祖), 즉 부(父), 조부(祖父), 증조(曾祖), 외조(外祖)도 당연히 민씨부인의 조상을 썼다. 조선시대와 같이 신분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호적에도 호주의 사조(四祖)를 적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민씨부인이 병인년에 작성하여 제출한 호구단자를 보면. 3년 전 양옥수가 작성한 호구단자와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녀가 비록 양옥수의 뒤를 이어 호주를 계승하였다고 하지만, 언제가는 다시 그 자리를 아들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법으로 규정한 바는 아니지만 남편이 사망한 후 부인이 호주가 된 경우, 아들이 좀 나이가 들면 아들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여성 호주와 관련하여 우리가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호주라는 말과 조선시대의 호주라는 말은 그 개념이 서로 달랐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에서의 호주라는 말은 단순히 그 집의 대표자라는 의미에 불과하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여성도 호주가 될 수 있었다”라는 말을 가지고 조선시대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를 논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노비도 호주가 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해서 노비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송만오(고문서연구팀 연구원, 전주대학교 언어문화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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