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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 특별한 음악활동…원로지휘자 유영수씨

 

하얗게 센 머리칼만 아니라면 세월을 읽기 어렵겠다. 힘있고 강한 어조, 뚝뚝 끊기는 듯 단호한 표현의 대화법도 한결 같다. 묵직한 가방안에서 그는 두터운 악보 먼저 꺼냈다.

 

"모두 어려운 곡들이거든요. 힘든 만큼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어요.”

 

지휘자 유영수씨(70, 원광대 명예교수). 모처럼 즐거운 외출에 나선 그는 활기가 넘쳤다. 오는 22일 창단연주회를 갖는 유스오케스트라를 지도해온지 4개월. 유스오케스트라는 전북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청소년 오케스트라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음악적 역량이 빼어난 유망주들이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선발되었지만 음악적 호흡을 한데 모으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유씨는 매주 월·수·금요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습실에서 어린 제자들을 만났다. 제각각의 개성으로 무장한 세대들과의 낯설기만한 만남. 끊임없는 연습과 자기 절제의 훈련으로 음악세계를 지켜온 노지휘자는 엄격했으나 어린 제자들은 한없이 발랄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유스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인 심춘택씨로부터 트레이너의 역할을 제안 받았다.

 

"망설이지 않았어요. 어린 세대들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다는 기쁨이 우선 컸기 때문이지요.” 다소 의외의 선택이다.

 

그는 이지역 오케스트라의 전통을 세운 주역이다. 올해로 창단 19년째를 맞은 전주시립교향악단에도 그의 음악적 열정은 고스란히 닿아있다. 지난 91년 상임지휘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기까지 그는 시향 16년을 지킨 역사였다. 척박한 땅을 일구어놓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장기집권'에의 질시. 미련없이 지휘봉을 놓고 대학 교수 자리로 오롯이 돌아갔지만 무대위에선 영원한 현역이었다.

 

"예술가에게 '은퇴'는 없어요. 카라얀은 아흔두살까지 무대에 섰지요. 내 삶을 뒤돌아볼때 40대가 열정과 테크닉을 앞세운 시기였고 50대가 음악과 인생을 나란히 놓았던 시기였다면, 60대에는 우주의 자연 법칙과 조화를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우주 안의 내 존재를 깨닫는 단계, 비로소 진정한 음악이 보이는 시기랄 수 있습니다.”

 

그의 우선 목표는 단원들이 좋은 연주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지만 내심으로는 '훌륭한 연주자'로 설 수 있는 삶의 태도를 전해주는 바람이 더 절실하다. 더 열심히 작품을 분석하고 연구해 단원들을 지도했던 그가 연휴가 아니고서는 단 한번도 빠짐없이 연습 시간을 지켰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창단 연주회에서는 지휘봉을 잡지 않는다. 유스오케스트라 음악고문인 존 쿠로가 지휘를 맡기 때문이다. 혹시 섭섭함이 없을까 물었다.

 

"한두곡 정도라도 지휘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어요. 한무대에 두명의 지휘자가 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더구나 어린세대들에게는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4개월 지도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어요.”

 

어린 제자들과 함께 하는 동안에는 정년퇴임 이후 한결 같았던 그의 일과도 변했고, 나이 일흔살에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음악활동은 특별한 의미로 안겼다.

 

4년전에 시작한 서예로 더 즐겁고 건강한 생활을 얻은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피아노 연주와 작품 분석을 위해 적잖은 시간을 투자한다. '공부하지 않는 예술가의 생명은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박하기만한 클래식음악의 흐름에도 우려를 감추지 않는다.

 

"전주시향에서 활동할때 사물놀이 협연 같은 새로운 작업을 많이 시도했어요. 실험적인 작업은 음악적 교감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체성을 상실한 장르간 결합이나 혼재는 위험해요. 클래식 음악은 질서있는 파장입니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찾아야해요.”

 

연습시간이 되어 걸음을 재촉하는 그를 따라 연습실에 들어갔다. 채 도착하지 못한 단원들의 빈자리가 적지 않았지만 그는 앞뒤 잴 것 없이 지휘봉을 들고 자리를 잡았다.

 

호통칠법한 순간,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10여년전 전주시향 시절의 그와 변한 것이 있다면 바로 그 부분이었다. 금새 긴장한 아이들의 연주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됐다. 지휘자 유영수는 그렇게 차분히 '질서있는 파장'을 만들어갔다. 원로의 외출은 즐거워보였고 아름다웠다.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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