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그들을 불렀다. 말없이.
소리없는 부름에 산을 찾았다.
고향을 떠나있는 아들이 어느날 문득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그리워 길을 나섰다. 그즈음 고향의 어머니도 토방 위에 선채 마을 어귀를 바라보며 '아들 녀석이 보고 싶네'라고 혼잣말을 했을 것이다.
산을 찾아 떠난 사람들의 지친 몸을 맞아주는 산. 그 풍경은 고향 찾은 아들과 어머니의 정겨운 만남을 닮았다.
山.
백두산에서 뻗어 두류산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을 거쳐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1천4백km의 큰 산줄기 백두대간. 우리땅의 뼈대가 되는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지리산(智異山·해발 1915m)은 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기억은 없다. 문득 떠나고 싶을때 주저없이 일상을 훌훌 털고 길을 나섰던 사람들. 지리산에 오르는 일은 이제 그들의 일상이 된지 오래였다.
공무원 김봉선씨(59·익산지구문화유적 관리사업소 소장), 그리고 사어가 정대영씨(56·전주시 효자동).
김봉선씨는 지난달 29일 3백13번째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정씨 역시 본격적으로 지리산을 찾기 시작한 92년 이래로 수도 없이 다녔으니 이미 오래전에 천왕봉 등정 3백번을 넘어섰다.
등반 횟수가 산에 대한 애정을 '계량화'한 것으로 볼 순 없지만 매주 1번씩 꼬박 6년을 다녀야만 이르게 될 3백회의 의미는 크다. 그들로부터 산 이야기를 들어보는 이유다. 더욱이 그들이 지리산을 찾는 일은 기록을 위한 서양의 '알파니스트'와는 다른 '생활', 그 자체가 아닌가.
일상에 쫒겨 삶을 뒤돌아볼 겨를 없이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이들을 산속으로 가게 하는 '치열함'의 끈은 무엇일까.
편도선 수술을 받고 건강 때문에 등산을 시작했던 김씨는 지금은 회원 50여명의 산악회 회장으로 활동중이다. 지리산 등반의 횟수를 잊지 않는 건 집에 돌아와 늘 등산코스와 등반중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짧은 메모를 남기는 그의 습관에 따른 것이다.
전주 시내에서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정씨는 78년부터 3년동안 덕유산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일했던 게 산과의 첫 인연이었다. 하지만 지리산을 찾기 시작한 건 이태의 '남부군', 조정래의 '태백산맥'등의 책이 동기가 됐다. 책을 통해 배경이 됐던 그곳을 직접 찾고 싶었고, 그럴 때마다 참을 수 없는 충동질은 어느새 그를 지리산에 올려 놓았다. '알수 없는 배고픔'을 그는 지리산에서 해결해왔다.
'왜 산에 오르는가'가 궁금했다. 우문(愚問)이라고 생각했지만 묻지않을 수 없는 질문.
김씨는 "산은 나에게 신앙의 대상과도 같은 존재”라고 말했고, 정씨는 "아이가 왜 엄마젖을 먹느냐는 질문과 같다”고 했다. 일요일마다 교회나 성당을 찾는 것처럼 일상의 한 레퍼토리로서가 아니라 위안과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또 배낭을 지고 오르는 한 걸음 한 걸음처럼 인내로 인생을 다스리는 '구도(求道)의 행적'이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정씨가 지리산에 오를 때 식구들에게 남기는 말은 "갔다 올께”한마디. '어디 가는데', '언제 오는데'라는 되물음은 없다. 아이가 엄마에게 "젖 먹을께요”라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건강이나 궁금함으로 시작됐던 이들의 산행은 이제 신앙처럼, 어머니처럼 지리산을 생각한다.
'지리산 예찬'에 대해서는 말문이 트였다.
늘 새롭다는 것이 이들이 꼽는 지리산 예찬의 첫 번째 이유다.
코스가 그렇고, 사계절이 그렇다. 같은 장소, 같은 계절이지만 한없이 황홀했던 적도 있었고 때로는 눈시울을 적시며 숙연해지기도 했다.
97년부터 99년까지 백두대간 종주를 마칠 정도로 전국의 산을 두루 찾았던 김씨는 지리산만한 산이 없다고 말했다.
지리산 어느 코스나 '발이 절로(저절로) 간다'고 했다. 어느 순간에 무의식 속에 걸음이 옮겨지는 순간, 세상의 시름이나 근심이 생각날 리 없다. 묘한 이런 기분은 발밑이 온통 구름 속이고 오로지 홀로 서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경험을 들려줬다.
정씨는 어느 풍경이 가장 아름답냐는 질문에 '빙그레'웃었다. 山사진을 찍는 유명한 작가에게 자신도 물었던 질문. 그 작가 역시 빙그레 웃기만 했다고 말했다. 어느 곳하나 아름답지않은 이곳에 하나만을 꼽으라니.
그러나 수백번을 찾은 산이지만 산은 그들에게 교만을 허락하지 않는다.
익숙한 길에서도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길을 잃는게 산이다. 둘 모두 풍경에 빠져 어느새 엉뚱한 자리에 놓여진 경험이 있었다.
그들에게 '늘 겸손해야 한다'고 또 '끝없이 뉘우치라'고 말하는 것이리라.
정대영씨는 인터뷰 끝무렵 박목월시인의 시 '청노루'를 읊었다.
'머언 산(山)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산은 자하산(紫霞山)/봄눈 녹으면//느릅나무/속잎 피어나는 열두 굽이를//청(靑)노루/맑은 눈에//도는/구름.'
어느 봄날 반야봉 묘향암에 올랐을 때, 박목월시인도 그 자리에, 그 풍경을 아마도 시로 옮겼을 것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도 어느 순간 시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봉선씨는 "지리산에 올라 까마득한 능선을 바라볼 때면 언제나 황홀했다. '참으로 장엄하고 아름다운 산'이라는 이 말 밖에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산이 인간의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이들은 말한다. 그리고 다시 자신들이 산을 오르는 이유.
"산은 자연의 위대함을 일깨웁니다. 인간은 극히 작은 자연의 일부일 뿐이지요. 나를 알게 하는 시간. 그래서 지리산에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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