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와 재즈를 결합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판소리가 세계로 나가는 노정이다.
무가로부터 온 한국의 전통음악 판소리와 흑인 민속음악으로부터 발전된 재즈를 결합하는 일은 모험이고 실험이다. 창작을 위한 실험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성과가 늘 예측 가능한 것은 아니다. 판소리와 재즈의 결합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판소리연구가 최동현교수는 “판소리는 세계와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판소리가 세계 무대에서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 다소 비관적이었던 그로서는 큰 변화다.
지난 22일 미국 시애틀에서 재즈뮤지션들과 음반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최교수를 군산대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최교수는 믹싱작업이 끝나 CD에 복사해온 연주를 먼저 들려주었다. 명창 정정렬의 춘향가 중 ‘어사 남원행’ 대목. 당대의 명창은 격렬하거나 혹은 잦아드는 서양의 재즈연주를 이끌거나 스스로 묻히면서 새로운 음악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흥미롭지 않아요? 과거속의 명창이 오늘의 연주자들과 음악으로 호흡한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판소리와 재즈의 결합이 이질적인 것만은 아니다는 느낌이 들죠. 오히려 어떤 부분에서는 극적인 효과가 더 살아나기도 하고. ”
판소리가 아니더라도 우리 음악과 서양음악의 결합은 꽤 오래전부터 시도되어온 작업이다. 이른바 클로스 오버의 영역에서 서로 다른 양식의 결합은 전혀 낯설지 않다. 재즈 역시 한국전통가락과 유사하다하여 김덕수사물놀이패나 이생강의 대금사물놀이팀 등이 재즈와의 접목을 시도해왔다.
그러나 판소리와 재즈의 결합은 새롭다. 그것이 본격적인 음반제작의 단계에 있다면 그 의미는 더더욱 달라진다. 음반제작사 신나라가 기획해 추진하고 있는 이 작업에는 최교수가 중심에 서있다.
음악감독으로 합류한 작곡가이자 첼리스트인 이안 라쉬킨(Ian Rashkin)은 유태계 미국인. 이미 한국전통음악을 소재로 한 재즈 음반 ‘조선지심’을 냈을 정도로 한국음악에 식견이 높다.
올해초 미국 시애틀을 방문해 기초 작업을 논의하고 돌아온 최교수는 이안의 편곡을 위해 발음과 장단이 정확한 정정렬명창의 춘향가 한대목과 장문희 임현빈 남상일 정은혜 등 젊은 소리꾼들로부터 다섯바탕의 눈대목을 새로 부르게 해 녹음했다. 라쉬킨은 정정렬의 소리를 듣고 "매우 파워풀하고 오랫동안 훈련해온, 그래서 일정한 경지에 이른 소리 같다"며 예술성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라쉬킨이 편곡해 새롭게 완성한 판소리와 재즈가 만난 작품은 흥미로웠으나 연주가 쉽진 않았다.
“오랫동안 라쉬킨과 호흡을 맞추어온 일곱명 재즈연주자들은 일정하지 않은 박자와 독특한 성음, 이해하기 어려운 가사 내용에 쉽게 마음 열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판소리를 받아들이는데에는 긴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연주자들은 판소리를 ‘매우 휴먼적인’이라고 평가했죠.”
판소리의 음악적 요소를 받아들이는 태도나 탁월한 해석으로 계면조의 슬픈 정서까지도 그대로 드러내는 이들의 연주를 통해 최교수는 판소리가 지닌 특징이 오히려 세계 음악의 흐름에 합류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했다. 비관적이었던 판소리의 세계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즉흥성이 생명인 재즈 뮤지션들이 판소리의 특성에 관심을 갖는 일은 당연할 것 같다”는 최교수는 음반 작업과 함께 이들을 초청하 연주무대도 기획하고 있다. 재즈와 판소리의 결합도 다양한 대목으로 확대해나갈 계획. 세계로 가는 판소리의 의미있는 행보가 시작됐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