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은 따가웠다. 따가운 여름 한낮을 달려 도심을 벗어나자마자 푸른 들판이 출렁거렸다. 들판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지평선을 이룬다는 <징게 맹갱 외에밋들> (김제·만경평야의 다른 이름)의 한 자락이었다. 들판을 가로질러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머리칼을 날렸다. 그리 먼 곳도 아니었다. 전주를 중심으로 국도 29번을 타고 달리면 겨우 6km 남짓한 거리였다. 징게>
문학관에서 조금 못 미치는 곳에 '벽골제 기념관'이 있었다.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문학비'가 큼직하게 서 있었다. 1980년대부터 20년이 넘는 세월을 한결같이 달려 온 작가 조정래의 문학세계를 기념하기 위해서일까. 문학비 뒤에 서 있는 소나무를 보니 조정래를 조선솔에 비유하던 작가 정채봉의 말이 떠올랐다.
'벽골제 기념관'을 나서자 정문에서 왼쪽 맞은 편 방향에 서 있는 건물이 곧장 눈에 들어 왔다. '아리랑 문학관'이었다. 문학관은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조성되었다는데, 아담하고 깔끔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어른 키를 훌쩍 넘기는 원고뭉치가 사람을 압도한다. 2만 장에 달한다는 {아리랑}의 육필 원고. 저 원고를 모두 세라믹 펜으로 한 글자씩 새겼다니, 그것도 장장 5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았다니. 숨이 헉, 막힌다. 작가 조정래가 스스로를 글감옥에 수감된 수인으로 비유한다는 말도 그리 과장은 아니지 싶다. 소설 쓰기는 정신적 창조 과정이 아니라 고된 노역의 길인가 보다.
1층에는 12권에 달하는 {아리랑}의 내용을 한눈에 알 수 있게 잘 갈무리를 해 놓아서 그것만 보아도 작품을 읽은 바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2층은 작가 조정래의 체취가 흠씬 풍기는 전시실이었다. 그 중에서도 {아리랑}을 집필하며 사용했다는 세라믹 펜 심지 뭉치는 잔잔한 감동이었다. 심지 하나도 없애지 않았다니, 작품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창조해낸 인물들과 그가 그려낸 우리 역사에 대한 애정이리라.
우리는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을 일깨운 장소를 실제로 보고 싶었다. 사실, 처음부터 우리의 목적지는 '하시모토 농장'이었다. 문학관 직원에게 물으니 친절하게 길을 일러주었다. '하시모토 농장'이 있었다던 죽산면으로 향하는 길은 내내 들판이었다.
여행길은 그리 멀지도 않았고 길을 헤매지도 않아 내내 순조롭게 느껴졌다. 방심한 우리는 죽산면을 지나쳐 가까운 심포항으로 향했다. 늦은 점심이나 먹고, 느긋하게 남은 일정을 마무리하려는 생각이었다. 꽃게탕 소리에 딸아이는 흥분하여 콧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음식점 주인 아주머니 말씀이, 요즘이 꽃게 산란철이라 포획이 금지되었단다. 딸아이는 실망하였지만, 그 대신에 기가 막히게 고소한 생합구이와 생합죽을 맛볼 수 있었다.
죽산면만 가면 아주 쉽게 '하시모토 농장지'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우리는 두세 시간을 헤맨 후에야 겨우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시모토 농장 사무소'는 서너 번 지나친 곳에 있었다. 우리가 헤매고 다닌 비옥한 들판이 바로 하시모토와 여러 일본인 지주들의 땅이었다.
'하시모토 농장 사무소'는 죽산면 파출소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50m 정도 떨어진 큰길 가에 있는 집들 사이로 10m쯤 안쪽으로 들어 간 곳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위치였다.
초록색 철문에 능소화꽃이 흐드러져 늘어져 있었다. 철문을 삐걱 열고 들어가자 그리 크지는 않지만 견고한 석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전형적인 일제 시대 건물이었다. 바로 그 앞집에 살고 계시는 김판길 할아버지(78세)께서 우리를 뒤따라와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그 건물이 바로 하시모토 농장 사무소였으며, 사무소 건물 뒤로 규모가 큰 기와집이 있었는데 그 곳이 하시모토의 집이었고, 그 집을 뜯어다가 김제 읍내에 다시 집을 지었다는 이야기. 농장 사무소는 해방 후에는 어떤 월남한 의사가 병원 건물로 사용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동진농조 죽산 출장소로 쓰이다가, 이번에 김제시가 '아리랑문학관'과 연계하여 관광지로 개발하려고 매입했다는 이야기. 농장 사무소 맞은 편으로는 메갈이간(방앗간)이 즐비했고, 거기에서 정미된 쌀들은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됐다는 이야기.
할아버지의 안내를 받아 {아리랑}의 발원지인 내촌과 외리로 향했다. 파출소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곧 넓은 들판이 전개되었다. '초록빛으로 가득한 들녘끝은 아슴하게 멀었다. 그 가이없이 넓은 들의 끝과 끝은 눈길이 닿지 않아 마치도 하늘이 그대로 내려앉은 듯싶었다'({아리랑} 1권 중에서). 그 들녘이 바로 여기였다. '하시모토 농장', 그곳은 허구의 산물이 아니라, 실제 역사였다.
우리가 오늘 하루 헤맨 그 어떤 논보다도 비옥한 땅, 그리하여 벼포기들이 탱탱한 탄력으로 바람에 흩날리는 땅, 그곳이 일본인 지주 하시모토의 땅이었다. 그곳이 '지삼출'이며 '송수익' 들이 목숨을 걸고 되찾아 지켜내고자 한, 전라도 농민들의 땅이었다.
그 들녘에 역사가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길을 지나는 할아버지 한 분 한 분이, 끝간 데 없이 너른 들판에 출렁이는 벼포기 하나 하나가, 바로 역사였다. 그것이 곧 작가 조정래가 발바닥으로 이 넓은 김제 만경 평야를 샅샅이 뒤지고 다닌 이유였을 것이다. 그것이 또한 하루 동안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의 머리 속에, 길목마다 우리를 안내하던 할아버지들의 골 깊은 주름이 자리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이수라(여성 다시읽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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