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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만에 첫시집 '달의 몸을...'펴낸 문금옥시인

상처받은 존재들에게 보내는 헌사

‘추락하면서 아프지 않은 것이/어디 있을까/온몸이 눈물인 저 눈발들/다만 비명을 감출 뿐인데//눈 내리는 날은 아름답다, 말하지 마라/눈 내리는 날은 고요하다, 말하지 마라//귀 닫고 듣지 않았던/순정한 함묵의 소리를 듣는 밤//두손 내밀어 고이 눈송이를 받아든다//아프지 말아라 아프지 말아라’(‘아프지 말아라’)

 

시인 문금옥씨(48)가 첫시집 ‘달의 몸을 엿보다’(모아드림)를 펴냈다. 87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하면서 등단한지 17년만의 외출이다.

 

시 안에 칩거하여 좀체 밖을 내다보려하지 않았던 시인의 외출은 아름답다. 동반한 시 53편. 편편이 치열하나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제 자신 삶의 변방을 드나들어서인지 작고 소외된 것들에 솔깃해지고 마음 깊어집니다. 시는 오랜 고통과 방황속에서도 나를 지치지 않게 하는 나침반 같은 존재였어요. 나를 붙들어 주었던 시들이 이제 세상에 나가 고단한 사람들에 힘을 주고 위안을 주는 향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철저하게 일상의 체험을 딛고 생성된 시들의 힘이 이런 것일까. 그의 시는 어느 것 하나 ‘치열함’의 근원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

 

‘소리 없는 비명이 정적을 가른다/쐐기풀 지천으로 드러눕는 산비알/어디까지 갈 거냐/소금발 이는 맨 정신으로/밥도 잠도 다 버리고/ 대책없이 솟구치는 불새 한 마리//이대도록 독 오른 그리움’(‘땡볕’)

 

‘독오른 그리움’을 껴안고서도 무례하지 않은 ‘치열함’을 무장할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시가 지닌 미덕이다.

 

낮고 작은 것들에 대한 지극한 애정,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거나 스스로 몸을 낮추어버린 것들을 향한 시인의 서정. 아름다우나 '치열함'의 존재에 맞닿아 있는 이유가 이쯤해서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숫구멍 채 아물지 않은 열사흘 달을 보려고/나무울 옹이자리 같은 망원렌즈에/한쪽 눈을 들이밀다가/나는 그만 처르릉대는 달의 소리를 들었다...’(‘달의 몸을 엿보다’)

 

“렌즈로 들여다 본 달은 상처 투성이었어요. 가슴저려오는 순간, 다시 그 상처위에 놓인 빛을 보았죠. 상처와 빛이 함께 쏟아져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거죠.”

 

‘눈부셔 차마 못 뵈올 상처의 온몸으로 뿜어내는 빛줄기라니’, 시인에게 세상의 모든 풍경은 상처가 있음으로 비로소 빛도 함께 있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러하니 새벽길 버스안에서 내다 본 ‘인력공사 처마밑에 줄지어 선 결빙의 사내들’(‘고드름’)의 서러운 내력은 상처 투성이로 안기지만 시인은 ‘흐르다 흐르다 맑은 눈물 끝머리 뒤돌아보면 살아 오래 헤매인 날의 빛나는 고통만으로 나 쓸쓸하지 않겠다’(‘찔레江’)고 삶에 대한 긍정적 시선을 포기하지 않는다.

 

등단과 함께 이내 쏟아져나오는 시집의 행렬속에서 오랜 자기 성찰을 겪고서야 한편의 시집 가만히 내놓는 시인의 겸양은 시의 존재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한다.

 

등단 이후 10년동안 아픔과 고통으로 시와 단절하고 살았던 그는 ‘그럼에도 시가 있어 결국 세상을 누리고 살 수 있었음을 알게되었다’고 고백했다. 다시 용기 내어 시를 만난 것이 97년. 이 시집은 이후 7년동안 쓰여진 시들이다.

 

시인 안도현의 표현처럼 시인의 시로부터 ‘단호하고 당찬 서정’을 만나다 보면 그를 그처럼 고통스러워하게 했던 삶의 노정이 무엇이었던가를 살짝 엿보고도 싶지만 시인은 시로 다가서는 존재. 시인의 고통으로 인해 우리가 시를 읽는 즐거움이 더 커지고 삶의 힘을 얻게 된다면 더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나즈막한 목소리의 그가 그윽하게 웃는다. 그의 시가 지닌 깊이가 달리 나오지 않았음을 알겠다.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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